원교 이광사, 창암 이삼만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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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교 이광사, 창암 이삼만은 누구
  • 입력 : 2018. 08.19(일) 14:44
  •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
<그림1중앙>
<그림2중앙>
원교 이광사는 공조판서 백하 윤순에게서 글씨를 배웠다. 원교는 진서, 초서, 전서, 예서에 모두 능했고 원교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이룩했다. 대표작은 서울대 박물관 소장의 '행서 4언시' 간송미술관 소장의 '고승간화도(高僧看畵圖)' 국립중앙박물관의 '산수도' 등이다. 특히 서예의 이론을 체계화시킨 '원교서결(圓嶠書訣)' '원교집선(圓嶠集選)' '동국악부(東國樂府)' 등은 후학들에게 큰 길잡이로 남아있다. 해남 대흥사(大興寺) 현판 '침계루(枕溪樓)' '대웅보전(大雄寶殿)' 강진 백련사(白蓮寺) 현판 '만경루(萬景樓)' 구례 천은사(泉隱寺) 현판 '지리산 천은사(智異山 泉隱寺)'등도 그의 작품들이다.
창암 이삼만은 원교 이광사에게 글씨를 배웠다. 특히 초서에 능한 창암은 19세기 호남 서단에서 물 흐르듯 이어지는 유수체를 완성해 필명을 떨쳤다. 조선 후기 3대 명필로서 동국진체를 개화 시켰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창암은 사심이 담기지 않은 자유분방한 탈속의 글씨를 물 흐르듯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위적인 서법을 거부한 그의 글시는 유수체(流水體), 창암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역 도처에서 그의 편액을 볼 수 있으며, 지리산 천은사의 보제루, 회승당, 경남 하동 칠불암의 편액도 그의 필적이다.
창암은 실험정신이 대단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칡뿌리로 만든 갈필, 대나무를 잘게 쪼개어 만든 죽필, 꾀꼬리 깃털로 만든 앵우필 등 가리지 않고 직접 만들어썼다. 그간 그는 추사에 가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 sangji.park@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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