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내가 자라면서 늘 접하던 풍경이다. 누군가 돌아가신 상황, 상가(喪家)판이 왁자지껄하다. 마당에는 차일(遮日)을 둘렀다. 굵고 진한 글씨로 장식된 병풍이 오칸접집을 가리기라도 할 듯 둘러쳐진다. 그 아래 갖가지 제사 음식들이 즐비하다. 일군의 당골들이 씻김굿을 한다. 수려한 무가와 갖은 악기의 반주들이 마당을 가득 채운다. 일군의 사람들이 중간중간에 마당으로 나와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재담을 한다. 등이나 배꼽에 박바가지를 넣고 곱사춤이나 배둥이춤을 춘다. 굿판의 주역이 아니지만, 초대 없이도 마땅히 참...
2023.07.06 15:40장마가 시작되어서 날이 후덥지근하다 금년에도 기록적인 폭염이 올 거라고 하는걸 보면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음이다. 그냥 그대로의 자연현상인가 아니면 인간들이 저지른 죄 값인가 가뜩이나 짜증나는 소식만 들려오는 세상에 기대하는 것은 없다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죄 없는 술잔만 기울이고 있을 것인가 얼마 전 찾아 간 캄차카 풍경으로 달래본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곳이기도 하면서 누구나 쉽게 가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보니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들...
2023.07.06 15:17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 지원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정부(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 민간단체(NGO)의 의미 있는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은 동포애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부는 빠져 있고 민간단체만 참여하고 있다. 국내의 민족 통합뿐만 아니라 해외 동포까지 통합하는 것이야말로 식민지를 겪은 한민족에게는 역사 구원의 방법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국내외 외국국적동포 지원을 위한 거버넌스 구축이 바람직하다. 우크라이나 피란 고려인이 한국으로 입국한 것은 역사적 모국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
2023.07.06 11:21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무분별한 고도성장과 급 변화 된 사회·문화적 정책에 따른 중앙과 지역의 알 수 없는 경계와 균열들은 그 곳을 삶의 터전으로 정착하여 살아가는 많은 도시 사람들의 기억을 다양한 방식으로 흐릿하게 만들었다. 1980년대 이후 국외 수출을 통한 국가 경제 성장이 급물살을 이루고 수출 규모가 계속 확대되었지만, 반면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오게 되었다. 1990년대 말, 좋지 못한 국내외 경제 상황으로 심각한 IMF 경제 위기를 정면으로 맞으며 정부와 기업, 그리고 온 국민들은 어려워진 한국 경제를 회...
2023.07.02 14:40철학자 칸트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동물과 달리 순수 실천 이성을 소유하고 이를 이루기 위한 ‘자유’의 힘이라 역설했다. 역사에 등장하는 독재 세력의 항거 역시 말도 않되는 불합리를 인정하고 순응함이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처럼, 저항 역시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의지’의 가장 강한 표출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르다노(Umberto Giordano, 1867∼1948)의 사실주의 오페라 는 프랑스의 위대한 시인으로 칭송된 실존 인물의 이름으로,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의 이상을 지지했으나 ...
2023.06.29 12:53어느 날 거문도 서도 덕촌 마을 해변으로 바위 하나가 떠밀려 왔다. 무심코 바다로 떠밀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바다로 떠밀수록 다시 해안으로 밀려왔다. 필시 연유가 있겠다 싶었다. 촌로들이 모여 의논했다. 틀림없이 상서로운 조짐 아니겠는가? 궁리 끝에 이 돌을 거문도 남쪽 관문인 ‘안노루섬(內獐島)’에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마침 고기가 안 잡혀 어민들의 고민이 깊었던 터였다. 거문도 안팎 바다에 좋은 어장이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보태졌다. 안노루섬 꼭대기에 당집을 짓고 매년 음력 정초와 추석에 제를 지냈다. 영기(令...
2023.06.29 12:37바다를 앞마당으로 삼은 한옥이 멋스럽다. 바다와 한데 어우러지는 풍경이 고즈넉하다. 바다가 그리는 그림도 수시로 바뀐다.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인가 싶더니, 금세 바닷물이 밀려든다. “멋지죠? 전망도 좋고요. 저의 집이자, 소꿉놀이 터입니다. 찾아와서 하룻밤 묵는 손님들도 좋아해요. 함평만 풍경이 이렇게 근사한지, 예전엔 몰랐다면서요.” 주포마을에서 ‘윤슬한옥’을 운영하는 김미정 씨의 말이다. 윤슬한옥은 한옥펜션이다. 손님에 내어주는 방은 모두 5개. 화장실과 욕실 등 내부가 현대식으로 꾸며져 있다. 온돌방이 있고...
2023.06.22 15:28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면서 역사상 유례가 없는 남부 및 서부 국경 국가로의 난민 이동이 시작되었다.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 헝가리인 인구는 약 155,000명에 달하며, 이 중 대부분이 헝가리와 접경하는 우크라이나 서부의 자카르파티아(Zakarpattia)에 살고 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는 서부의 헝가리인들이 동부의 러시인들과 같이 분리 독립을 주장할 것을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양국은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두 국가 간의 역사적 연결은 짧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 초기에 주로 폴란드로 피란...
2023.06.22 15:11‘이슬털이의 두 출처’, 한국학호남진흥원에 연재하는 내 칼럼 ‘진도의 상장례 다시 읽기’ 세 번째 글의 제목이기도 하다. 호남학진흥원 연재를 시작한 까닭은 한국학이 나아가야 할 바를 좀 더 명료히 하기 위해서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나 안동국학원에 대응하여 장차 이를 바를 내 방식으로 풀어내는 셈이랄까. 내 속셈은 이름도 빛도 없이 스러지고 일어나던 기층문화의 맥락 추적에 있다. 겹치고 포개져 마치 일노래의 후렴처럼 늘 반복되는 말들이, 귀한 지면을 소비하는 말의 성찬이 아니라, 고된 노동에서 돌아와 찐 감자와 신 김치, 막걸리 한 ...
2023.06.22 14:42장마가 시작되는가. 비가 내린 뒤에도 뭔가의 미련이 남는지 구름이 좀처럼 떠나지 못하고 발아래 바다를 이룬다. 햇살 좋고 꽃이 피어야만이 잘난 것은 아닌 듯,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 세상이 있고 없고다. 문전옥답이라는 말 대신 여기서는 문전비경이라고나 할까. 비경은 아무에게나 다가오는 게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너무도 쉽게 맞이하고 있으니 그 복은 또 어디에서 왔을꼬. 나를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산 좋고 물 좋고를 알아버리면 낭패라 한다. 세상을...
2023.06.22 14:31세계의 수도라 불리는 뉴욕은 생동하는 긍정의 에너지가 넘실대며 무한한 상상력에 바치는 오마주라 할만큼 이 도시를 찾는 모든 이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곳이다. 필자에게 뉴욕은 어떤 도시인가라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뉴욕은 나의 삶에 대한 본질적 질문에 해답을 찾을 수 있는 도시였으며, 행복이 무엇인지 도시가 답하고 감사와 감동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원천을 찾을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 도시였다고 말 할수 있을 것이다. 도시가 자리 잡고 세계 경제와 문화를 선도해 온 뉴욕에서 세계 클래식 공연계의...
2023.06.15 16:28조선이 일본으로 보낸 외교사절을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라 한다. 고종 때는 이름을 수신사(修信使)로 고쳐 부른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풀이다. “통신사는 조선시대 조선 국왕의 명의로 일본의 막부장군에게 보낸 공식적인 외교사절이다. 사절의 명칭은 조선측은 통신사, 일본측은 일본국왕사라 했다. 태종 때부터 통신사의 파견이 정례화되어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총 20회(조선 전기 8회, 조선 후기 12회)가 이루어졌다.” 이에 비교되는 것이 연행사(燕行使)이다. 연나라의 수도가 연경(燕京)이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청나라의 수도, 지금의...
2023.06.15 13:44가끔 우리는 현대미술 작품 앞에서 조금은 난감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1940년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 아르헨티나)의 ‘공간 개념(Concetto Spaziali)’ 작품은 ‘4차원 예술(tetradimensional art)’을 창조하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을 보여 주는 개념미술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가노트에 따르면, 기존의 예술에서 정의 내려진 모든 시적 · 예술적 · 조각적 형태들은 ‘4차원 예술’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깊게 베인 무지의 캔버스, 구멍 뚫린 판금...
2023.06.11 14:56기억(記憶)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사람도, 풍경도, 건물도 매한가지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기억을 한다. 똑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남는 이미지는 서로 다르다. 그 위에다 다른 생각을 입히고 각색도 한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지극히 정상이다. 뜻깊은 일을 오래도록 남기기 위해 표지석도 세운다. 기록관 같은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정치적인 의도를 담은 표지석이나 건축물은 부침을 겪기 일쑤다. 한때 ‘특수’를 누리다가, 손가락질을 받는다.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한다. 담양 성산마을을 생각한다. 40여 년 전, 1982년 3월 ...
2023.06.08 15:4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자 피란민들은 슬로바키아를 통해 체코로 들어왔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23년 3월 기준 체코에 입국하는 난민의 47%가 여성이고 33%가 아동이었다.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우크라이나 난민 460,000명 이상이 체코에서 임시 보호 비자를 받았지만, 2022년 말까지 약 355,000~390,000명만 체류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산하였다. 현재 체코에 와서 일하는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은 우크라이나의 중부 및 남동부 지역 출신들이다. 체코 노동 사회부에 따르면 2022년 6월에는 약 68,000명...
2023.06.08 1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