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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인구 14만
경제개발시기 다수 출향
수도권 향우만 15만 추산
이청준ㆍ한승원ㆍ송기숙…
이귀남 전 법무장관
김태정 전 검찰총장
지방경찰청장도 다수 배출
재계엔 맨주먹 신화 많아
장흥(長興)은 서울 광화문에서 바라볼 때 우리나라 정남진(正南津)이다. 장흥이라는 지명은 고려 인종이 이곳 출신 공예태후를 맞아 의종ㆍ명종ㆍ신종을 낳은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길이 번창하라'라는 의미를 담아 내려줬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장흥은 특히 일제 때는 헌병대가 있었고, 검찰과 법원이 일찌감치 자리잡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인근 강진ㆍ영암ㆍ완도 등 이웃 고을을 호령하던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장흥 출신 중에는 판ㆍ검사와 경찰출신이 많다.
장흥은 또 '한국문학의 고향'으로 문화적 자부심이 큰 곳이고 여전히 향교가 존재할 정도로 유림들이 득세하던 곳이다.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효시라 불리는 '관서별곡'의 저자 기봉(岐峰) 백광홍(白光弘ㆍ1522~1556ㆍ안양면 기산리), 영ㆍ정조때 대유학자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ㆍ1727~1798ㆍ관산읍 방촌리)의 고향이다. '서편제' 등 남도민의 한과 소리를 소설로 담아낸 소설가 이청준,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을 쓴 한승원, '녹두장군' 등으로 유명한 송기숙도 장흥 출신이다. 또 이승우ㆍ이대흠ㆍ위선환 등 무려 100여 명의 등단 문인을 배출했다. 장흥지역 곳곳이 모두 작품의 배경으로 국문학도들의 단골 답사지가 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장흥은 1966년 14만4000여 명의 인구가 살 정도로 군세가 큰 곳이었다. 그러나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시절 서울로, 부산으로, 그리고 일부는 제주도로 생계를 찾아 이동해 현재는 인구가 4만1500여 명으로 줄었다. 15만명으로 추산되는 수도권 장흥 향우수가 이농인구를 짐작하게 한다. 이들은 맨주먹으로 고향을 떠나 학업과 생계를 해결하며 그곳에 굳건한 뿌리를 내렸다.
경제계
장흥 출신 경제계 인사는 맨주먹으로 상경, 일가(一家)를 이룬 인물들이 많다. 문주현 MDM 회장 겸 한국자산신탁 회장, 박주봉 대주KC그룹회장, 김형진 온세텔레콤 회장 겸 세종텔레콤 대표이사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문주남(83ㆍ장흥읍ㆍ전남대) 대동산업 회장은 요업분야의 전문가로 대한도자기타일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문 회장은 1983년 도자기 제조업체인 선도산업㈜의 법정 관리인으로 선정된 후 회사를 정상화시켰다. 그후 국내 타일산업의 획기적 도약을 위해 직접 대동산업을 창립, 동종업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문주현(56ㆍ관산면ㆍ검정고시ㆍ경희대)MDM 회장 겸 한국자산신탁 회장은 검정고시를 통해 27세에 경희대에 입학ㆍ졸업한 뒤 나산실업에 입사해 안병균 전 회장과 연을 맺고 부동산개발사업에 발을 들이게 됐다. 그는 7년 만에 최연소(36세) 임원이 돼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IMF 외환위기로 회사가 부도가 나 실직했다. 그러나 그는 자본금 5000만원으로 분양대행 업체를 세웠고 MDM을 창업, 15년 만에 국내 최대 디벨로퍼(개발업체)로 성장시켰다. 2001년에는 문주현장학재단을 설립, 현재 100억원 규모의 장학재단으로 키웠다. 현재 제3대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박주봉(57ㆍ대덕면) 대주KC그룹회장은 철강업계에서 성장해 사업을 다각화한 인물이다. 1988년 대주개발을 설립, 1999년 대주중공업 회장, 2001년 한국종합화학 사장 등 10여 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그는 제 1ㆍ2대 인천건설자재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고 한국철강구조물협동조합 이사장,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2010년 금탑산업훈장도 수상했다.
김형진(56ㆍ부산면ㆍ방송통신고ㆍ경기대) 온세텔레콤 회장 겸 세종텔레콤 대표이사는 '투자의 귀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1990년 홍승기업으로 출발, 지난 2007년 세종텔레콤, 2011년에는 온세텔레콤을 인수하며 통신업계의 한 축으로 성장했다. 그는 2003년부터 안익태기념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해준(57ㆍ장흥고ㆍ전남대) 교보증권 사장은 지난 2008년 6월 취임 이후 올해 세번째 연임에 성공한 인물이다. 김 사장은 IB 업무 전문가로 잘 알려져 대우증권에서 IB사업본부장, 자산관리영업본부장 등을 지냈으며 2005년부터는 교보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IB투자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김정전(68ㆍ용산면) 대화UPC 대표이사는 서울 충무로에서 인쇄업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을 이끌고 있으며, 2012년 인쇄업계 최초로 제5대 서울상공회의소 중구상공회장에 취임했다. 그의 동생이 김명전(59ㆍ장흥중ㆍ조대부고ㆍ성균관대ㆍ언론학 박사) 삼정KPMG 부회장이다. 김 부회장은 KBS PDㆍ기자를 거쳐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사무처장, EBS 부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생명의 숲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패션주얼리 전문업체를 경영하는 안영국(63ㆍ장동면ㆍ명예경영학 박사) 밀레니엄영우 회장은 2008년 제45회 무역의날에 백만불 수출탑을 수상했으며 현재 재경장흥군향우회 회장을 맡고 있다. 임장현(56ㆍ대덕면) 전국자동차전문학원연합회장(서울 문정자동차전문학원 대표이사), 이동주(60ㆍ성균관대)포천힐스컨트리클럽 대표이사, 오명준(용산면) 신영인쇄 대표이사(세종대왕기념사업회 상무이사 겸 운영위원) 등도 장흥출신들이다.
관료ㆍ공공기관
경찰 출신이 타 지역에 비해 유독 많은 것이 특징이다.
김세옥(74ㆍ부산면ㆍ조선대) 전 대통령 경호실장은 1967년 경찰에 입문, 전남지방경찰청장ㆍ경찰대학장ㆍ경찰청장을 지냈고,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대통령경호실장을 지냈다. 그는 현재 경남대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김세옥 전 경호실장의 친 동생이 김옥전(67ㆍ부산면ㆍ국민대) 전 부산경찰청장이다. 김 전 청장은 지난 1975년 간부후보 23기로 경찰에 입문한 뒤 전남지방경찰청장 등을 거쳤다. 김 전 경호실장과 김 전 청장은 국립경찰이 창설된지 58년만에 처음으로 형제가 같은 지역인 전남지방경찰청장을 맡는 기록을 남겼다.
광주와 전남지방경찰청장을 지낸 안재경(56ㆍ관산면ㆍ관산중ㆍ동신고ㆍ조선대) 전 경찰대학장, 광주지방경찰청 차장을 지냈던 강경량(51ㆍ장흥읍ㆍ경찰대 1기) 전 경기지방청장, 백승호(50ㆍ장흥고ㆍ전남대) 현 전남경찰청장, 이기창(서석고ㆍ경찰대 2기) 경기지방경찰청 3부장, 박병동(58ㆍ대덕ㆍ조대부고ㆍ조선대) 전남지방경찰청 보안과장 등이 장흥 출신들이다.
관료사회 원로는 손수익(82ㆍ장흥읍) 전 교통부 장관이다. 한국경제사회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손 전 장관은 광주ㆍ전남 출신 원로들로 구성된 호남미래포럼 고문도 맡고 있다. 안종운(65ㆍ광주고ㆍ서울대ㆍ경제학 박사) 전 한국농촌공사 사장, 위승복(71) 한국체육개발원장, 문병민(59ㆍ광주일고) 광주ㆍ전남지방병무청장, 위성인(55ㆍ인하대) 전북지방중소기업청장 등도 있다.
또 금융계인물로는 위성복(75ㆍ관산면ㆍ장흥중ㆍ광주고ㆍ서울대)이노츠 대표이사 회장이 조흥은행맨으로 성장해 두번의 조흥은행장을 역임했으며, 조흥은행 이사회 의장 등도 역임했다.
세무분야에서는 임향순(73ㆍ부산면ㆍ장흥고ㆍ서울대ㆍ경영학 박사) 다함세무법인 대표이사 회장이 행정고등고시를 거쳐 국세청에서 성장, 광주지방국세청 청장, 제22ㆍ24대 한국세무사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재경광주전남향우회 28ㆍ29대 회장을 지냈다. 박근혜 정부들어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소통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 조세심판관과 국무총리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을 역임하고 최근 강남구에 백종한세무회계사무소를 연 백종한 (61ㆍ장흥읍ㆍ장흥초ㆍ용산고ㆍ성균관대) 전 조세심판관 등 다수의 세무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법조계
법조계에서는 위철환(56ㆍ장동면ㆍ중동고ㆍ서울교대ㆍ성균관대) 대한변호사협회장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위 회장은 중학교 졸업후 상경, 신문배급소에서 생활하며 중동고 야간부를 졸업했고, 1979년 서울교대를 졸업한 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성균관대 법대 야간학부에 편입했다.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위 회장은 1989년 수원에서 개인변호사로 개업했고 2009년 경기지방변호사회 회장에 당선돼 연임했다. 특히 그는 지난 2월 제47대 대한변협 회장에 선출돼 취임함으로써 전국적인 화제를 모았다.
원로급 법조인으로는 검사출신인 이귀남(63ㆍ대덕면ㆍ인창고ㆍ고려대) 전 법무부장관(2009~2011년), 역시 검사출신으로 검찰총장을 지낸 김태정(73ㆍ부산면ㆍ광주고ㆍ서울대) 전 법무부 장관(1999년)이 있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김세옥 전 경호실장ㆍ김옥전 전 부산경찰청장 형제와 장흥군 부산면 내안리 같은 집안 출신이다.
현직으로는 김유범(44ㆍ부산면ㆍ서울대)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있고, 변호사로는 강성신(69ㆍ대덕면ㆍ고려대) 평택법무법인 변호사, 광주지법 장흥지청장을 역임한 김광산(64ㆍ관산면) 법무법인 호성 대표변호사, 김진상(장흥읍ㆍ장흥고ㆍ고려대ㆍ전 장흥지원장) 변호사, 박종문(장흥읍ㆍ장흥고ㆍ서울대ㆍ서울지법 부장판사) 변호사, 서울 중구청장을 지낸 박형상(55ㆍ장흥읍ㆍ광주일고ㆍ전남대) 변호사 등이 있다.
문화ㆍ예술계
민중미술 작가인 박진화(57ㆍ홍익대) 화가가 장흥출신으로 강화도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서울미술공동체 대표, 민족미술협회 서울대표, 민족미술협회 상임이사를 역임했다. 김선두(56ㆍ장흥읍ㆍ중앙대) 중앙대 예술대학 한국화과 교수는 소설가 이청준과 함께 고향에 대한 기억을 문학과 미술로 만남을 꾀해온 인물이다.
대중가요 '노오란 셔쓰의 사나이'로 유명한 원로 작곡가 손석우(94ㆍ 장흥읍ㆍ목포상고) 선생은 2003년 문화훈장 보관장, 2011년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위성신(51ㆍ중앙대) 극단 '오늘' 대표도 장흥출신이다.
정치계
현역 정치인으로는 김경협(52ㆍ장흥읍ㆍ장흥중ㆍ부산기계공고ㆍ성균관대)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경기 부천시 원미구갑)이 있다. 김 의원은 장흥중을 졸업한 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부산으로 가 부산기계공고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를 졸업했다. 김 의원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부천지부 의장, 부천근로자장학재단 초대 이사장 등을 지낸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사회조정비서관으로 근무했다. 제19대때 경기 부천시 원미구갑으로 출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원로 정치인으로는 이영권(78ㆍ용산면ㆍ목포기계공고) 전 국회의원이 제12ㆍ13ㆍ14대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또 김옥두(76ㆍ대덕면ㆍ목포해양고ㆍ한양대) 전 국회의원은 민주화추진협의회 운영위원을 역임하고 제14ㆍ15ㆍ16대 3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국민회의 총재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작고한 길전식(1924~2011년ㆍ장흥읍ㆍ경복고ㆍ육사) 전 국회의원(6ㆍ7ㆍ8ㆍ9ㆍ10대)도 장흥출신이다.
학계ㆍ출판계
조상호(64ㆍ장흥읍ㆍ장흥중ㆍ광주고ㆍ고려대ㆍ신문방송학 박사) 나남출판사 대표이사는 전라남도를 줄여 '나남'이라는 출판사명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매스컴 분야 전문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다. 1988년 계간 '사회비평' 발행인을 지내기도 한 그는 2005년 제37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문화부문을 수상했다.
이성춘(52ㆍ장동면ㆍ장흥중ㆍ광주일고ㆍ전남대ㆍ동국대 북한학 박사) 조선이공대 특전부사관과 교수는 ROTC 소위로 임관, 육군본부ㆍ국방부 등 주요 정책부서에 근무하면서 현역시절 대한민국 육군에서 가장 권위 있는 참군인대상 충성상을 수상(2004년)한 인물로 '북한 대남 군사협상 모델을 분석한 첫 북한학 박사'이기도 하다. 예비역 대령이다. 학술원 종신회원이기도 했던 작고한 김두헌(1903~1981년ㆍ장흥읍ㆍ동경제국대학) 전 전북대총장은 재경광주전남향우회 6대회장을 맡기도 했다.
체육계
스포츠스타로는 장흥 출신 '형제 장사' 문형석(25ㆍ관산면ㆍ영월군청)ㆍ문준석(23ㆍ제주특별자치도청ㆍ관산면ㆍ관산초중ㆍ순천공고ㆍ경기대) 장사가 있다. 금강장사 형석과 태백장사 준석은 지난해 추석장사씨름대회에서 각각 장사에 등극, 민속씨름 사상 처음으로 형제가 장사 타이틀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동생 준석은 지난해 설 장사씨름대회에서도 태백장사에 올랐었다. 문주현MDM 회장 겸 한국자산신탁 회장이 많은 뒷바라지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브라질월드컵 축구국가대표로 현재 잉글랜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미드필더로 활약중인 윤석영(25ㆍ장흥초ㆍ장흥중ㆍ광양제철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태권도 남자 80kg 급에서 금메달을 딴 차동민(28ㆍ관산면ㆍ한체대ㆍ한국가스공사)선수가 장흥출신이다.
의료계
의료계에서는 이종균(64ㆍ안양면ㆍ조선대ㆍ의학박사) 송도병원 이사장이 유명하다. 이 이사장은 국내에서 가장 손꼽히는 대장항문분야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이화여대ㆍ인아대ㆍ성균관대 등 각 대학 외래ㆍ객원교수로 활동한 이 이사장은 대한대장항문학회 회장도 역임했다.
강덕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