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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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김승옥의 도전
  • 입력 : 2016. 06.24(금) 00:00
60년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은 단연 '무진기행'이다. 순천 출신 소설가 김승옥이 쓴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많은 작가와 평론가들로부터 '한국 문학사상 최고의 단편소설'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한국어로 쓰인 가장 아름답고 명징한 문장,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소설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동인문학상 수상작 '서울 1964년 겨울' 또한 소설계를 빛낸 명작이면서 문학의 교범으로 손 꼽힌다. 그러다보니 김승옥의 작품은 작가 지망생이라면 꼭 한번은 필사를 해야하는 통과의례로 인식된다.

하지만 김승옥의 출발은 문학이 아닌 만화였다고 한다. 1960년 서울대 불문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승옥은 서울의 한 경제신문에 '파고다 영감'이라는 제목으로 네 칸짜리 시사만화를 그렸다. 지방 출신 고학생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김승옥은 여기서 현실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다. 동인지 '산문시대'에 친구들의 캐리커처를 그리고 여러 단행본에 표지를 그릴 만큼 그림에도 재능을 보여줬다. 시나리오 작가부터 대학교수, 잡지 편집장에 영화감독까지 직업도 다양했다.

그런다고 어려움이 없었을까. 1980년 동아일보에 장편 '먼지의 방'을 연재하다 자진해서 중단한 것은 그 중에도 아픈 기억이다. 김승옥은 훗날 "광주민주화운동이 터지고 검열로 원고가 몇 줄씩 잘려 나가는 일이 이어졌다. 그 일로 집필 의욕을 상실했고 결국 절필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2003년에는 평생 지기였던 이문구의 부음 소식을 듣고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얼핏 보면 사는 게 화려하게 보이지만 남는 것은 오히려 적자뿐이었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소설가 김승옥이 화가로 변신해 전시회를 갖는다. 제목도 '무진기행 그림전'이다.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어렵게 병을 이겨냈지만 말과 글은 아직도 되찾지 못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김승옥은 잃어버린 말과 글을 대신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해 온 수채화와 초상화 등을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지금도 무진기행의 마지막 문장인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말을 가슴에 새긴다고 한다. 자신의 속물성과 무기력을 자각해 자신을 더욱 채찍질해야 한다는 뜻일까. 한국 문학의 이정표를 세우고도 또 다시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그의 열정이 아름답다.

이용환 논설위원 hwany@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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