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타인의 시선에 대한 욕망 그리고 인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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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타인의 시선에 대한 욕망 그리고 인생샷
김세휘 감독의 '그녀가 죽었다'
  • 입력 : 2024. 05.19(일) 17:52
‘그녀가 죽었다’ 포스터
‘그녀가 죽었다’ 스틸샷
바야흐로 개인 미디어 시대다. SNS로 대변되는 네트워크 망에서 최강자는 소비자 개인이다.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은 자신의 일상 중 최고의 인생샷을 올리며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제시하며 자유롭고 평등하게 욕망하고 산다. 한편으로 이 절대권력을 등에 업고 수십 만 팔로워를 통해 자본을 축적하거나 관종의 진화, 관음증과 사이코패스가 난무하는 환경이라면 소셜 포비아, 곧 SNS 포비아 층이 생겨남도 마땅한 현실이다. 젊은 감독이 쓴 시나리오 ‘그녀가 죽었다’에는 ‘소셜 미디어의 스릴러’라는 소재의 참신함 뒤안에 마땅히 영화가 사회적 거울임을 반영한다. 공인중개사 구정태(배우 변요한)는 자신의 직업이 너무 좋다. ‘개미아빠’로 활동하는 SNS에서 부동산 정보로 ‘좋아요’를 받는 것도 칭찬의 댓글을 보는 것도 즐겁고, 부동산 매물로 내놓은 타인의 거주지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라 생각한다. 웬만한 동넷사람을 훤히 꿰고 있던 그에게 낯선 젊은 여성 한소라(배우 신혜선)가 눈에 들어온다. 그의 관음증이 발동하고, SNS를 통해 새로운 인물탐색에 직진하게 된다. 그 결과, 44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미모의 셀피인. 비건인이자 동물 애호가인 스타 인플루언서인지라 그녀를 향한 관심과 흥미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고조된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2013년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selfie’(셀피)를 선정했다. 그러기 훨씬 전,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이전부터 한국인은 일찍이 ‘셀카’의 민족이었다. 2000년대 초반, 휴대폰의 보급확대로 ‘디지털 포토’가 선풍을 일으키고 ‘얼짱 카페’에는 수십만 명이 셀카 사진을 올렸다. 요즘 들어 입에 올리는 ‘인생샷’은 셀카의 진화된 명칭이다. 인생샷은 아름다운 화장법, 날씬한 몸매, 트렌디한 패션, 여기에 힙한 장소의 배경이 합쳐져 완성된다. 이름난 카페일수록 포토 스팟을 여럿 갖추고 있는 것은 이러한 트렌드 때문이다.

“우리는 인생샷은 알지만 인생샷을 찍는 여성들은 모른다.” 여성학 논문으로 ‘인생샷 뒤의 여자들’(2023)이란 책을 펴낸 저자 김지효는 인생샷을 찍는 여성의 심리를 디지털 페미니즘에 근거하여 전개했다. 우리에게는 이미 여성에게 부과되는 외모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만연된 총체적 문제이다. 그런가 하면 이를 자원으로 활용하는 여성이 SNS ‘인플루언서’를 이용해 돈을 버는 산업구조가 있다. 보여주는 데 그치는 지극히 가벼운 나르시시즘을 과거의 ‘된장녀’, 현재의 ‘인스타충’으로 지칭하고 ‘인생샷을 찍는 여성’ 심리에 대입한다. 저자는 인생샷 뒤에 있는 여자들의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피드였고, 피드와 피드 사이에는 다양한 양가적 가치와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피드를 통해 이미지를 관리하는 인스타그램에서는 이미지 콘셉트를 정하고 이에 어울리는 사진만을 전시, 관리한다. ‘강남미인’이나 ‘떡칠녀’를 피하기 위한 ‘꾸안꾸’ 사진보정을 통해 “여성들은 자기수용과 자기부정, 자기애와 자기혐오를 오가다 자꾸만 발이 엉킨다”는 심리를 지적한다. 영화의 마지막 신에 소라가 기자와 인터뷰하는 장면이 있다.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소라의 지극히 만족스러운 미소가 이어진다. 여전히 타인의 시선을 욕망하는 그녀는 수많은 인플루언서의 근원적 욕망과 닮아 있다. 감독은 자신의 목소리를 형사 오영주(배우 이엘)의 중심 잡힌 무게감으로 대신한다. “구정태, 당신이 피해자라 생각지 말아요. 당신 역시 스토킹 범죄자니까.” 미디어 절대권력자 개인은 소셜 미디어, 개인 미디어를 통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타인의 욕망을 욕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이지만, 권력에의 의지와 그에 따라오는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인간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야 조화롭지 않을까… 영화는 반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