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일천 작 ‘Absence(부재)’. 드영미술관 제공 |
이번 전시는 리일천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공간과 시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응축된 사진 작품들로 구성된다.
집과 길, 도시와 건축물 등 우리는 삶의 궤적마다 다양한 물리적 공간을 만들고 스쳐 지나가지만, 그 모든 공간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무심히 잊히고 사라지지만, 때로는 아무런 예고 없이 마주친 공간의 한 장면이 뚜렷한 인상으로 남아, 기억 속 깊은 어딘가에 오래도록 머문다. 리일천 작가는 바로 이러한 ‘문득’의 순간에 주목한다.
그가 포착한 것은 공간 그 자체이지만, 그 안에는 설명되지 않는 정서적 파동과 감각의 여운이 스며 있다. 인간이 부재한 공간의 문, 계단의 날카로운 단면, 벽과 바닥이 만나는 경계 등 건축적 요소들을 어떤 연출이나 조작 없이 있는 그대로 사진에 담는다.
![]() 리일천 작 ‘Phenomenon Space III(현상공간 3)’. 드영미술관 제공 |
리일천 작가의 작품 세계는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지각현상학’을 통해 깊이 있게 읽힌다. 메를로-퐁티는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단순히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몸 전체로 느끼고 경험하며 세계와 관계를 맺는 과정이라고 봤다. 즉, 우리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세계 속을 살아가며 그 안에서 끊임없이 감각하고 반응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처럼 ‘살아 있는 지각’의 순간을 담아낸 리얼천의 작품 속 공간은 관람자가 단순히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 직접 그 안으로 스며들고 관계를 맺게 하는 체험의 장(場)이 된다.
변기숙 학예연구실장은 “이번 전시는 리일천 작가가 제안하는 치유의 여정이다. 질서와 혼돈, 존재와 부재가 공존하는 공간 속에서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하고, 세계와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는 시간을 관람객에게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 드영미술관 리일천 기획초대전 ‘Phenomenon Space-Chaosmos of Healing’ 포스터. 드영미술관 제공 |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