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권력의 장식품’ 전락한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출품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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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尹 ‘권력의 장식품’ 전락한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출품작
건물·미디어아트 ‘아원의 시공간’
한옥 정자만 한남동 관저에 설치
미디어아트 빠져 창작 의도 훼손
예술계 "권력에 이용당해" 비판
예산 내역 등 비공개…깜깜이 행정
'작품 일부만 이전' 법적 논란도
  • 입력 : 2025. 06.11(수) 16:29
  •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
지난 2023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전시된 ‘아원의 시공간’. 광주디자인진흥원 제공
최근 이재명 대통령 취임 직후 한남동 관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만찬 자리에서 ‘개 수영장’으로 추정되는 시설과 함께 마당에 놓인 미니 한옥 정자가 관심을 끌었다. 이 정자는 단순한 전통 건축물이 아닌, 미디어아트와 전통건축이 결합된 예술작품의 일부로 밝혀졌다. 지난 2023년 제10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전시된 ‘아원의 시공간’ 작품이 ‘반쪽짜리’ 형태로 옮겨져 윤석열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설치된 것이다.

●예술계 “창작 의도 훼손한 관저 이전 ‘유감’”

‘아원의 시공간’은 전해갑 아원고택 대표와 담양 출신이자 세계적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작가가 협업한 작품이다. 비엔날레 전시 당시 전통 한옥 양식과 디지털 미디어아트를 결합해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현재 대통령 관저에 설치된 정자는 전체 작품의 한 요소일 뿐, 미디어아트 구성은 빠진 채 물리적 구조물만 옮겨진 상태다.

제10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주관했던 광주디자인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2023년 10월10일 김건희 여사가 전시 현장을 방문한 뒤 대통령실 측에서 해당 작품의 관저 이설을 타진했다. 주최 측은 전시 기간 중 반출이 어렵고 소유권이 없다는 이유로 요청을 거절했다.

당시 대통령실이 미니 정자를 설치한 이유는 ‘국빈용 문화 콘텐츠’로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광주디자인진흥원 관계자는 “대통령실 측에서 국빈 방문 시 우리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문화 콘텐츠, 일종의 레거시 전략 일환으로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 등 주요 외빈의 방문 일정이 예정돼 있었고, 작품의 상징성과 미학적 가치가 대통령 관저에 어울린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 UAE 국빈 방한 일정이 미뤄지면서 전시 종료 후 작품 이전이 완료됐다.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얀 UAE 대통령이 지난해 5월28~29일 첫 국빈 방문한 당시에 촬영된 사진에서 한옥 정자가 대통령 관저에 설치돼 있는 모습이 확인됐다. 정부 측이 해당 작품의 소유권을 가진 아원고택과 작품 이설에 대한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아트는 데이터 영상 형태의 작품으로 비엔날레 전시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서 철거했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미디어아트도 함께 이전을 원했지만, 내부 설치용으로 완성한 작품을 외부에 전시하는 건 창작 의도를 벗어나기 때문에 이 작가가 반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작가는 “한옥 미니 정자의 경우 소유권이 없어 이설 협의에 제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었다”며 “다만 미디어아트는 작품 의도와 공간성 측면에서 관저에 설치하는 건 불가하다는 방침을 당시 고수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이남 작가가 참여한 미디어아트만 빠진 정자가 대통령 관저에 ‘문화 콘텐츠’ 명목으로 설치된 점에 대해, 예술계는 유감을 표하고 있다. 예술이 권력의 희생양이 됐다는 비판이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예술기관 관계자 A씨는 “‘아원의 시공간’은 전통과 디지털을 결합해 완성된 총체적 작품이다. 일부만 떼어낸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온전한 예술이라 보기 어렵다”며 “두 창작가가 처음 의도한 작품의 의미와 예술적 관점에서도 심히 부적절한 행태”라고 꼬집었다.

아원의 시공간. 광주디자인진흥원 제공
●설치 과정·예산 집행까지 ‘깜깜이’

해당 정자는 대통령실이 외빈 접대용 ‘문화 레거시’로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설치와 관련된 건축 허가, 소유권 계약, 예산 집행 내역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논란이 된 바 있다. 서울 용산구청 자료에 따르면 해당 위치에 6.12㎡ 규모의 증축 공사가 지난해 5월27일 신고됐으며, 약 8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예술작품 자체의 구입비나 설치비는 별도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는 특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5년 고 전혁림 화백의 ‘통영항’을 1억5000만원에 구입해 청와대에 설치했을 당시, 관련 사항이 외부에 상세히 공개된 것과 대조된다.

현직 대통령이 거주하는 공간에 전시 목적으로 미술품을 구입한 사례는 있었지만, 윤 전 대통령의 경우 구입·설치 경위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이다.

또한 비엔날레에 출품된 작품이 청와대나 대통령 관저로 이전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게다가 이번 사례처럼 작품의 일부분만 옮겨져 원작의 의미와 구성이 훼손된 상태는 더욱 이례적이다.

광주시의 전시 관계자 B씨는 “애초에 완성된 형태로 ‘아티스트 피’(Artist Fee)를 지급하고 계약된 작품이라면, 일부만 이전하는 것은 계약 및 예술윤리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권이 교체된 상황에서 이 미니 정자의 법적 지위와 향후 철거 및 보존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특히 이를 둘러싼 법적 쟁점도 제기되며 작품의 소유권 및 설치 적법성에 대한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김덕은 변호사는 “작품을 공공예술로 전시한 후, 국가기관이 사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문화재보호법이나 저작권법상 위반 소지가 있는지 따져볼 수 있다. 저작권법 제13조는 저작자의 동일성유지권을 규정하고 있다”며 “저작자는 자신의 저작물의 내용·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아원의 시공간’ 작품은 비엔날레 전시 기간 원래 지붕이 없었으나 대통령 관저에 설치되면서 지붕이 추가되는 등 변형이 이뤄졌다. 이러한 변형이 원작자의 동의 없이 진행됐다면 저작인격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