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서금석>아파트 혁명2, 온돌에서 진화한 K-아파트 바닥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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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서금석>아파트 혁명2, 온돌에서 진화한 K-아파트 바닥난방
서금석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광주시회장
  • 입력 : 2025. 06.24(화) 17:14
한국의 아파트가 지금과 같은 고층아파트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닥난방의 진화 덕분이다. 천연가스 공급을 통한 바닥난방을 갖춘 고층아파트는 세상에서 한국밖에 없었다. 한국은 가스가 생산되지 않는 나라이다. 그런데도 현재 한국의 대부분 주택은 실내 온도를 높이기 위한 땔감으로 천연가스를 사용한다. 난방의 원료인 천연가스가 대중화되었던 것은 땔나무나 연탄 혹은 석유에 비해 훨씬 효율적이며, 편리하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파트 실내는 바닥난방 방식이다. 불과 30~40년 전의 아파트는 모두 저층이었다. 고충이 불가능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난방의 땔감이 연탄이었다. 연탄 아궁이이거나 연탄보일러였던 시절, 아파트 복도는 연탄으로 가득했다. 주방 한쪽에 연탄보일러가 설치됐다. 더 이상의 층수를 높일 수가 없었다. 고층아파트의 출현은 천연가스 공급과 첨단 보일러 시설이 설치되면서 가능했다. 한국의 도시가스 공급과 보일러 회사가 세계적인 이유는 한국 아파트 고층화 성공과 그 궤를 같이한다. 아궁이에서 지금의 가스 난방 보일러 시설로의 극복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이었다.

한국의 아파트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다. 한국 주택은 토방(土房) 문화였다. 옛집에서 마루에 올라가거나 온돌방에 들어가기 전에 마당과 분리된 좀 높은 평평하게 다진 흙바닥을 토방이라고 한다. 흙마루라고도 불린다. 여기에 신발을 벗어 놓는다. 그리고 실내에서 맨발로 생활한다. 실내 바닥과 몸의 밀착 면적 비율이 높다. 바닥난방은 방바닥에 드러눕기가 가능한 구조이다. 그리고 직접 그 열을 몸으로 접할 수 있어 열 효율적이고, 위생적이다.

굳이 토방이 ‘방(房)’으로 쓰이는 것을 보면, 신발을 벗는 위치나 행위 또한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토방에서 신발을 벗는 전통은 실내 방바닥이 온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토방의 높이는 아궁이의 설치와도 관계가 깊다. 그 높이만큼 아궁이와 방바닥 아래 열 통로였던 고래 설치가 가능한 공간이 생긴다. 지금의 아파트 실내 현관과 방바닥의 단 차이는 난방 엑셀 파이프 배관을 메운 몰탈 높이와 같다. 아파트는 구들장이 없다. 온돌의 고래 역할을 몇 센티 되는 엑셀 파이프 배관이 대신한다. 온수가 흐르는 배관을 덮는 몰탈 시멘트는 층간 소음을 줄여주는 소음기 역할도 해줬다. 기막힌 발명품이다. 아파트의 현관이 토방(土房)이 된 유래가 이렇다.

온돌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따뜻한 돌’, 즉 ‘구운 돌’이다. 이것이 ‘구돌’이 되고, ‘구들’로 불려 평평한 바닥 ‘구들장’이 되었다. 겨울을 이겨내야 했던 지역이 우리만이 아니었을 것인데, 서유럽이나 이웃한 중국 혹은 일본은 왜 방바닥 데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우리가 그들과 삶의 양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서양의 벽난로와 중국의 화로는 지금의 히터나 라디에이터로 발전했다. 중국과 위도가 같다손 치더라도 경도가 달랐다면, 4계절의 체험도 달라졌을 것이다. 구들장은 겨울철 방바닥을 데워 열효율을 높이고, 여름철 구들장 아래 고래는 시원한 공기의 통기구가 되었다. 이것은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되었다. 온돌은 북방 유목문화와 남방 농경문화를 잇는 다리가 되었다. 이것이 역사다.

2002년 이래 5년 남짓, 중국은 무서운 프로젝트를 펼쳤다. 지금의 중국 땅덩이 안의 고대국가는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이데올로기였다. 동북공정이다. 요하강 일대 요령성과 쑹화강 유역 흑룡강성 그리고 두만강과 압록강 넘어 간도 혹은 만주라 불렸던 지금의 길림성 등 동북3성 일대에서 발원했던 고대국가 고조선과 부여와 고구려 그리고 발해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해 버렸다. 역사 왜곡이다. 그릇된 이데올로기 극복은 인구 숫자로 불가능하다. 남북한 합쳐봐야 인구수 9천만 명 정도로 세계 제일의 중국을 이겨내기 힘들다. 숫자로 싸울 일이 아니다.

동북 지역의 한국사가 사라질 위기에 있다. 고대국가와 관련한 사료도 충분치 않다. 그나마 있는 것도 중국의 자료가 대부분이다. 최근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도 썩 좋지 않다. 지금 그 지역에서 공동 발굴은 사실상 힘들어졌다. 현재 중·고등학교 한국사 9종 교과서뿐만 아니라 공무원 한국사와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조차 고대 동북 지역이 한국사였음을 입증할 만한 자료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 잘 알다시피, 비파형청동검의 발굴 분포지와 겹쳐져서 발견된 고인돌 정도가 두드러질 뿐이다. 욕심 같아서는 고대 온돌방식도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비파형청동검과 고인돌 그리고 온돌방식은 중국문화와 확연히 구별되는 우리 역사 영역이다.

중국의 역사책, ‘구당서’ 열전 동이 고구려 편에서 온돌을 소개하고 있다. “겨울철에는 모두 구덩이를 길게 파서 밑에다 숯불을 지펴 (방을) 데운다.” 송기호 선생은 이를 ‘쪽구들’이라고 했다. 고구려는 집안 한쪽 공간에 온돌을 설치했다. 사료에 등장하는 온돌 장면이다. 이 짧은 문장 하나가 한국사에서 온돌문화 공동체를 보여줬다. 한국과 러시아 관계가 좋았을 적, 노무현 정권 당시 2005년 8월에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에 있는 옛 발해 성터에서 이제까지 발굴된 것 가운데 가장 크고 완벽한 형태의 온돌 유적이 발견됐다. 발해는 고구려를 이었다.

한국의 주거 형태인 온돌방식은 삼국을 거쳐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져서 지금 한국의 바닥난방 아파트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난방 방식의 진화를 통해 초고층 아파트 생활을 구현해냈다.

이 방식은 세계에서 유일하다. 2010년 전후하여 중국도 아파트 붐이다. 양쯔강 이북을 중심으로 한국의 바닥난방 방식을 가져다 쓰고 있다. 그들이 나중에 바닥난방 아파트 종주국을 주장할까 봐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