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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군 삼기면 경악리에 사는 노병철(38)씨는 큰 꿈을 키워가고 있는 귀농인이다.
서울에서 고시공부를 5년간 하다 감정평가사 학원강사 생활을 접고 지난 2012년 결혼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왔다. 울금 농사를 짓던 어머니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수확해놓은 울금 처리를 그가 하게 된 것이 귀농의 계기가 됐단다.
당시에는 울금 판로가 없어 한 포털카페를 통해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종자 나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의외로 찾는이가 많았단다.
수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 노씨는 각박했던 대도시 삶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결단을 내렸다. 말그대로 U턴을 했다. 명문 지방대를 나온 그가 시골로 내려와 농사를 짓는다는 말에 그의 부모는 극구 반대했다고 한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선택에 대해 여전히 마뜩잖게 여긴다고 했다.
그는 20여가구가 사는 마을에 낙향한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가장 젊은 초보농부지만 현재 1만평의 땅에서 직접 울금을 재배하고 있다. 7개 작목반 (2만평 규모)에서 생산한 물량까지 수매해 울금을 10여가지 제품으로 가공해 온라인직거래로 판매까지 하고 있다. 말그대로 농업의 6차산업화를 실천하고 있는 '신농업인'다.
명문대 나와 귀농 연매출 2억5000만원
작년에는 시세가 좋지 않아 연매출액 2억5000만원을 올렸지만 올해 연 매출목표액은 5억원이다. 지난해 고향에 있는 고개이름을 딴 '불로치'라는 유한회사를 설립해 농업법인 CEO가 됐다.
그는 "지난 5월 울금을 블랙화하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 등록까지 해놓은 상태"라면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하고 직접 노력을 통해 뭔가를 이뤄내고 있는 것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으며, 아직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지만 미래 비전까지 생기게 되어 귀농하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노씨처럼 최근 몇년 새 도시 거주자가 U턴, I턴, J턴하는 귀농ㆍ귀어ㆍ귀촌자가 늘고 있다. 도시가 갖고 있는 흡인력이 자꾸 떨어진데다 사람들의 삶의 지향점이 변하고 있어서다.
해방 이후 6ㆍ25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사회는 1960년대 경제개발시대를 맞아 먹고 살기 위해 농촌인구가 대도시로 몰려들었다. 특히 서울은 국가 수도로서 정치ㆍ경제ㆍ문화의 중심지여서 블랙홀처럼 전국 농촌의 젊은층 인구를 흡수했다. 이처럼 농촌을 떠나 도시를 향하는 사회 현상을 '이촌향도(離村向都)'라 불렀다. 이로 인해 전국 농촌의 공동화와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됐고 , 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듣기 어렵게 됐다.
그런데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제가 지구촌을 휩쓸게 되자 '1등', 소수 가진자만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많은 이에게 더 이상 좋은 직장과 좋은 집, 좋은 차 등을 보장해줄 수 없게 된 대도시는 꿈을 키울 수 없는 절망의 도시로 변모했다. 서울이 7년째 인구의 순유출(전출-전입)이 일어나는 이유다.
베이비부머, 다시 村으로 村으로
매년 10만명 이상이 서울을 떠나고 있다. 여기에는 베이비부머(baby boomerㆍ1955~1963년 출생한 세대)의 은퇴가 한몫했다. 주로 50대 연령층인 이들은 714만 여명으로 우리나라 총인구의 14.6%를 차지하는 대규모 인구집단이다. 대도시 거주자만도 580만명(서울 210만명)에 달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13.9%는 귀농ㆍ귀촌을 희망하고 있고 실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집계한 재작년 전남지역 귀농ㆍ귀어ㆍ귀촌인구는 3만3423가구 4만7550명, 작년 3만 1432가구 4만2716명으로 나타났다. 특히 작년 전남 귀농인구는 경북 (2221가구) 다음으로 가장 많았다. 인구 감소에 고령화까지 겹친 전남으로서는 그마나 다행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0년 199만 명이던 전남 인구는 2010년 172만 명으로 10년 새 30여 만 명이 감소했다. 같은 기간 65세 이상 고령층도 27만 명에서 35만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활력을 잃고 있는 전남으로서는 귀농ㆍ귀어ㆍ귀촌 등을 통한 인구 유입이 무엇보다 절실한 셈이다.
전남도와 도내 지자체가 2020년까지 2만가구의 귀농ㆍ귀어ㆍ귀촌을 목표로 귀농ㆍ귀촌 종합지원센터 설치ㆍ운영, 도시민 귀농ㆍ귀촌 창업과정 교육, 귀농인 자금 저리 융자 등 다양한 도시민 유인 정책을 펴고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2만명 유치 조례 만든 전남도
또한 전남도는 귀농ㆍ귀촌인 2만 가구 유치를 위한 조례안 개정안도 마련했다.
이런 지자체의 노력은 귀농ㆍ귀어ㆍ귀촌를 통해 날로 쇠퇴하는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대규모로 은퇴하는 베이비부머라는 수요가 있고 농업(6차산업)이 미래유망직종으로 꼽히고 있는 것도 기회로 보고 있다.
특히 도시로 나가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주역이 됐던 베이비부머가 귀농ㆍ귀어를 통해 인생2막을 본격 펼칠 때 도농상생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 농어촌에 활력을 불어넣는 주역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도시생활을 하다 농촌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귀농ㆍ귀촌인이 소규모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4월 발표한 '한국 농어촌 마을의 변화 실태와 중장기 발전방안'이란 연구결과물에 따르면 귀농ㆍ귀촌인이 많이 거주하는 마을이 그렇지 않은 마을에 비해 공동체 활동 수준과 경제 다각화 활동 수준 모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귀농ㆍ귀촌과 마을 활성화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고학력 귀농ㆍ귀어ㆍ귀촌 마을에 활력
리더의 역량도 마을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리더의 학력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거나 그 지역 고향출신으로 타지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돌아온 리더가 존재하는 마을의 경우 경제 다각화 수준과 공동체 활동 수준이 타 마을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또한 많은 전문가들이 농부를 유망 직업으로, 농업을 유망 산업으로 지목하고 있다. 지난해 재테크박람회 자리에서 세계적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는 "향후 20년간 선망의 직업은 농부, 다음 생애는 금융인보다 농부의 삶을 살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세계적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타업종에 비해 생명산업인 농업의 성장성에 기대를 걸며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 추세도 "미래 동력은 농업"
이미 해외 정보기술(IT) 기업들은 농업이 미래성장동력임을 예측하고 대규모 투자를 하며 농업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 나라도 정보통신기술(ICT),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등 첨단 과학기술을 농업에 접목시켜 신성장동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우리 정부도 농업을 생산 중심의 1차 산업에서 제조ㆍ가공의 2차, 체험ㆍ관광ㆍ서비스의 3차 산업을 융복합시킴으로써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6차 산업화하고 있다.
하지만 2014년 중국, 뉴질랜드, 호주 등 농업 강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우리 농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기후 변화로 인한 이상 기상이나 농촌의 고령화를 생각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농업의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실제 귀농ㆍ귀어ㆍ귀촌을 통해 제2의 인생을 구가해보려했던 사람들이 역귀농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어려운 농업농촌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시행착오 줄이도록 알짜정보 취재
이같은 시대 상황에 부응해 본보는 지난 4월22일부터 23일까지 이틀간 서울 한 복판인 광화문 광장에서 '광주전남귀농귀촌박람회'를 개최했다. 본보는 전남도와 도내 22개 지자체와 함께 이 박람회를 통해 저렴한 토지 가격과 깨끗한 자연환경(청정한 바다 포함)을 가진 전남이 귀농ㆍ귀어ㆍ귀촌의 최적지임을 서울시민에게 널리 알렸다. 이것만으로 언론의 역할을 다할 수 없었다.
하여 본보는 이번 기획취재를 통해 '촌으로 턴해서 인생2막을 꽃 피울수 있는 실질적이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려 한다.아울러 어떻게 하면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이를 위해 전남을 비롯한 전국 성공사례, 일본 사례, 지자체의 노력, 전문가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취재해 독자들에게 선보일 것이다.
이기수 기자ㆍ홍성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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