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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마지막 공연과 해체
1967년 8월, 매니저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갑작스레 사망하자 비틀즈 팀워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비틀즈는 멤버 저마다의 개성이 너무 뚜렷했으나 그나마 매니저였던 브라이언에 의해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1968년 폴 매카트니가 나중에 결혼하게 되는 사진작가 린다 매카트니를 만났고, 존 레넌이 아내 신시아와 이혼, 전위예술가인 오노 요꼬와의 사랑을 선택하는 등, 멤버들의 신상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여러 변화 속에서도 멤버들은 또 하나의 명반인 'The Beatles(더 비틀즈)' 일명 'White Album'을 발표하지만 끝내, 끝으로 향하는 뱃머리를 돌릴 수는 없었다. 1969년 1월 30일 그들은 돌연 런던의 애플 스튜디오 옥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은 옥상으로 고개를 돌렸고, 수 많은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1966년 이후 단 한번도 펼친 적이 없었던 멤버 4명의 공연이 시작된 것이다.
이날 공연은 이듬해에 공개된 비틀즈의 다큐멘터리 영화 'Let it be'의 마지막 촬영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 공연이 그들의 마지막이 될 줄은 그 누구도 상상치 못했다.비틀즈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고, 1970년 마침내 해체를 선언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 후 비틀즈는 단 한번도 함께 모여 공연을 펼치지 않았고, 1980년 존 레넌이 비극적인 총격사건으로 사망한 후에는 그나마 남은 가능성 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세월은 흘러 2001년 11월 29일 조지 해리슨 마저 세상을 떠나고, 결국 1969년 애플 스튜디오 옥상에서 펼쳐진 깜짝공연은 비틀즈 최후의 공연으로 남게 된다.
●존 레넌, 총탄에 잠들다
1980년 12월 8일 월요일 밤 11시께 뉴욕 맨하탄 타코타 아파트 앞에 리무진 한대가 멈췄다. 차에서 내린 남자가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본 순간, 다섯발의 총탄이 그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이 남자는 경찰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던 중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존 레넌의 최후였다.
비틀즈의 리더로 싱어송 라이터인 존 레넌. 언제나 이상향을 꿈꾸며 세상과 치열하게 싸웠던 실천가. 오노 요꼬와 함께 거처하던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3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두 번의 자살 미수 경력자인 데이비드 채프만이란 사나이는 어렸을 때 부터 존 레넌의 열렬한 팬이었다. 극도의 히스테리와 우울증으로 정서가 불안정한 인물이었고 그의 우상을 향한 빗나간 집착이 결국 존 레넌을 살해하는 비극을 낳고 말았다.
채프만은 사건 당시 미동도 않은 채 체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J.D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책을 들고 있었다고, 아니 읽고 있었다고 알려져 한때 이 책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존 레넌의 사망소식이 알려지자 세계는 경악과 충격에 휩싸였다. 방송국들은 모든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레넌의 추모방송을 내보냈으며, 하루 종일 비틀즈와 존 레넌의 솔로곡들을 방송했다.
영국 리버풀에 있는 비틀즈 박물관에 가면 존 레넌의 죽기 전 모습을 담은, 스틸 사진으로 연결된 그의 최후가 영화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그가 생전에 발표했던 명곡 'Imagine'이 밤낮 구별없이 나즈막히 흐른다. 그가 떠나간 저 세상에는 평소 그가 꿈꾸었던 평등하고 모두가 사랑하는 이상향이 있을까?
●두번째 비틀즈 멤버의 죽음
전설적인 비틀즈의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이 2001년 11월 29일 오후 1시30분, LA에서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58세였다.
비틀즈의 수많은 전설에 대해 더 말해 무엇하랴만, 조지 해리슨의 사망에 즈음해 영국인들이 비틀즈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각별했는가를 보여주는 깜짝사건이 하나 있다. 조지 해리슨의 사망 직후인 2002년 1월 26일, 이미 발표된 지 30년이 더 지난 그의 싱글인 'My sweet lord'가 다시금 영국 싱글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는 이변이 연출된 것이다.
1971년 1월 영국 싱글차트 정상에 오른지 무려 31년만의 화려한 컴백이었다. 물론 팝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영국인들은 해리슨의 마지막 가는 길에 아무런 애정표현 없이 그냥 보낼 수는 없었나보다.
비틀즈, 이제 두 명을 보내고 두 명만 남았다. 조지 해리슨의 'My sweet lord'와 'Something' 역시 명곡 중의 명곡으로 우리 가슴에 남아 있다.
●2012 런던올림픽 피날레 'Hey Jude'
2012년 영국 런던 하계올림픽 피날레의 마지막 무대에서는 비틀즈의 생존 멤버인 폴 매카트니의 'Hey Jude'(헤이 쥬드)가 불려졌다. '헤이 쥬드'는 존 레넌의 아들 줄리앙의 7살 생일날에 초대된 집에서 곡을 썼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 노래에 얽힌 비하인드는 이렇다.
존 레넌은 이 곡이 자신에 대한 곡인줄로 알았다. 진실은 곡이 발표된지 20년이 지나고서야 밝혀졌다. 폴 메카트니는 당시를 이렇게 얘기했다. 존 레넌과 부인이었던 신시아 레넌이 이별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신시아와 줄리앙을 만나고 막 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고 부터 이 곡을 흥얼대기 시작했다. 줄리앙과 평소 꽤 친한 사이였지만 안타깝고 애처로움이 맘 속에 밀려들어왔다. 그런데 가사는 줄리앙도 쥬드도 아닌 쥴스(Jules)였다.
'Hey! Jules, Don't make it bad' 저기 쥴스야, 안 좋게 만들지마.
근데 나중에 쥴스보다 쥬드가 더 컨트리 웨스턴 적인 느낌이 다가와 쥬드로 녹음을 했던 것이다.
결국 '헤이 쥬드'는 줄리앙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가 된 것이다.
노래는 대서양 양쪽의 미국과 영국에서 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미국에서 9주간 1위를 하며 전 세계적으로 비틀즈의 명곡으로 남게 된다.
특히 '헤이 쥬드'는 비틀즈의 최다판매 싱글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 노래는 마지막 엔딩 부분이 압권이다.
'나 나… 헤이 쥬드' 가사가 무려 18번이나 반복되면서 페이드 아웃으로 끝난다. 마디수로 따지면 72마디의 긴 시간이다.
런던 하계올림픽 피날레에서 그라운드의 전 세계 선수들이 이 부분을 합창했다. 머리카락이 솟고, 소름이 돋아 올랐다. 71살 폴 매카트니의 열창이 눈에 선하다.
올림픽의 대미는 그렇게 끝이 났다. 비틀즈 만세, 폴 메카트니 만세다!
●에필로그-'Yesterday'
1965년도에 발표된 곡 'Yesterday'. 비틀즈가 내놓은 걸작 중의 걸작, 우리 지구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팝이다. 필자가 알기로 2000년에 국내 갤럽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팝송 1위는 약 40여년간 단연 'Yesterday'였다. 이유가 없다. 이 지구상에서 'Yesterday'는 단 1초도 멈추지 않는다! 아- 비틀즈.
국소남 통기타 가수ㆍ문화공연시민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