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채은지>노동절에 그려보는 진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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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단상·채은지>노동절에 그려보는 진짜 대한민국
채은지 광주시의원
  • 입력 : 2025. 05.01(목) 18:08
채은지 광주시의원.
5월 1일 노동절, 매년 이맘때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는 포스터가 있다. 고용노동부가 제작한 근로자의 날 홍보 포스터다. 포스터에는 “노동이 존중받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노동자 여러분을 응원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의료 종사자, 요리사, 소방관, 농업인, 택배기사 등 다양한 직업인이 등장한다. 이 게시물이 늘 반향을 일으키는 이유는, 포스터 아래 달린 촌철살인 코멘트 덕분이다.

“다 안 쉬는 직종. 포스터 만든 기관도 못 쉼.”

노동을 기념한다면서 정작 그 ‘노동’이 쉬지 못하는 현실. 이 간극이야말로 오늘날 노동절의 민낯이다. 필자가 수습 노무사로 노무법인에서 열정을 불태우며 일하던 시절, 노동권 수호자가 된양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각기 다른 노무법인으로 흩어졌던 동기 노무사들은 ‘노무법인은 노동법의 사각지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자문사의 근로조건을 검토하고, 계약서를 정비하고, 적정임금을 설계하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근로조건은 챙길 틈이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아는 것이 때로는 고통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치 영역에서도 비슷한 느낌의 두 집단을 만났는데, 하나는 정당의 당직자와 국회의원 보좌인력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언론인들이다. 노동정책을 만들고 법을 다루는 실무자들이 정작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주 52시간제와 주 4일제를 외치는 의원 뒤에서, 시간외수당도 연차휴가도 챙기지 못하는 보좌진. 이들의 현실에서, 진정한 노동정책이 탄생할 수 있을까?

언론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고발하기 위해 가장 먼저 달려가는 이들이, 정작 본인이 겪는 부당한 처우에는 침묵할 수 밖에 없다.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이들이, 스스로의 권리에 눈감아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진정한 사회적 정의가 실현될 수 있을까? 이처럼 노동을 하고 있지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제도 밖에 있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일하는 중이다.

‘사업장 규모’가 작다고 해서 노동자의 정체성이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다. 5인 미만 사업장, 우리나라 사업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 공간에서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도, 해고의 제한도, 연차 휴가도 없다. 헌법은 평등을 말하지만, 노동법은 그 평등에서 일부를 배제하고 있는 셈이다.

‘고용형태’가 달라진다고 해서 노동자의 정체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특수고용직이든, 플랫폼 노동자든, 모두가 이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자 구성원이다. ‘일하는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누구나 최소한의 법적 보호는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일하는 사람 권리보장법’은 그 상식의 출발점인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자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일터에서 사라진다. 하나는 기후위기와 기술혁신이라는 거대한 구조 변화 속에서 충분한 지원 없이 조용히 배제당하는 방식이다.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말은 반복되지만, 현장의 전환은 고용 안정도, 재교육도 없이 노동자의 퇴장으로 이루어진다.

다른 하나는 안전장치조차 없는 작업환경에서 반복되는 산업재해로 생명을 잃는 방식이다. 기술은 발전하지만, 사람을 보호하는 시스템은 제자리에 멈춰있다. 결국 노동자는 미래에서도, 현재에서도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노동 없는 성장, 권리 없는 일터, 쉼 없는 생존, 책임 없는 소멸. 부조리한 일상이 반복되는 한, 진짜 대한민국은 쉬이 오지 않는다.

오늘 우리는 다시 그려야 한다. 노동하는 모두가 존엄한, 진짜 대한민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