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사이버펑크>“대신 낳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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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사이버펑크>“대신 낳아드립니다”
  • 입력 : 2023. 11.30(목) 17:43
필자는 결혼한 지 갓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새댁’이다. 진부하지만, 행복하냐는 물음 다음으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역시 ‘2세’에 관한 것이다. 자녀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고 특별히 불쾌하지는 않다. 다만 머릿속이 복잡해질 뿐이다. 내년이면 내 나이가 몇이던가, 만삭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출산과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면 다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가볍게 던진 질문 하나에 답변을 하려면 먼저 쏟아져 내리는 무수한 현실을 살펴야 한다. 첨단 기술을 주제로 하는 칼럼에서 시작부터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최근 개봉한 ‘팟 제너레이션’이라는 SF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미래는 앞서 필자가 고민하던 부분에 획기적인 대안을 내놓고 있다.

자연적인 것이 불필요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에서 레이첼과 엘비는 ‘팟’이라고 불리는 인공자궁을 통해 아이를 갖는다. 식물학자로 자연적이지 않은 것들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남편 앨비는 처음에는 팟을 통해 아이를 낳는 것에 반대하지만, 승진을 앞두고 있는 아내 레이첼의 상황과 설득에 결국 팟을 통해 체외수정부터 출산까지의 과정을 온전히 함께하게 된다. 여성의 체내에 있는 태아 대신 커다란 알의 형태를 가진 팟과 함께 일상을 보내게 된 두 사람은 다양한 고민과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결국 자연적인 환경에서 팟을 통해 건강한 아이를 얻게 된다.

영화에서는 팟을 통한 출산에 결코 완전한 지지를 보내지도, 그렇다고 부정적인 느낌의 디스토피아적 결론을 내지도 않는다. 팟 임신 기간을 거치며 두 사람에게 일어나는 부모로서의 변화들은 오히려 과학기술을 비판한다기보다는 조화할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특히 영화 속에서 팟 출산을 지지하며 레이첼에게 조언을 건넨 한 여성의 대사가 꽤 오랜 시간 머릿속에 맴돌았다. “여성이 생물학적 희생에서 벗어난 역사적 쾌거인데.”



현대 의료기술 수준을 감안할 때 인공자궁은 가까운 미래에서 충분히 실현가능한 기술이다. 이미 정자와 난자를 체외(시험관)에서 인공 수정시킨 후 자궁에 이식하는 의료기술인 시험관 시술은 자연임신에 어려움을 겪는 많은 부부들이 시도하고 있는 의료기술이며 일본 도쿄에서는 난자 냉동 시술을 받는 여성들에게 보조금까지 지급하기로 결정하면서 저출산을 극복하려고 하고 있다.

실제 인공자궁으로 향하고 있는 연구도 꽤나 진척이 있는 상태다. 미국의 필라델피아 아동병원(CHOP) 태아연구센터는 6년 전 인공자궁에서 초미숙 상태의 양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어미 양의 자궁에 있던 초미숙 양을 제왕절개로 꺼낸 뒤 비닐백 형태의 바이오백에 넣어 성장시킨 것인데, 태아를 키우는 데 필수적인 요건인 영양분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처리하는 과정을 바이오백 외부의 인공 태반 장치와 연결해 해결했다. 연결고리는 탯줄, 바이오백은 자궁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자연태반을 인공자궁에 이식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해당 연구팀은 지난달 미국 식품의약청(FDA)에 인공자궁의 인체실험 허용 여부를 신청하면서 관련 기술의 임상 적용이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벤공대, 독일의 아헨공대, 이탈리아의 밀라노공대 등 유럽의 명문 3개 공대 역시 지난 2016년부터 조산한 태아를 살리기 위한 인공자궁 개발에 착수했고 알려졌다.

이처럼 인공자궁 기술은 현재까지 조산으로 위기에 처한 신생아들의 생명을 구하는데 집중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자연출산의 의학적 위험성, 갈수록 노산이 늘어나는 현실, 난임과 저출산, 여성의 신체적 자기결정권 등과 연계해 크게 환영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인공자궁에서 태어난 아이의 친부모권에 대한 문제나 인공자궁의 오작동이나 고장으로 인한 태아의 권리가 침해되는 문제 등 수많은 난제도 존재한다.

자연적인 것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인간적인지, 아닌지는 이제 인류가 선택할 몫이다. 인구 감소로 인한 국가 소멸의 위기에 직면한 오늘, 인공자궁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