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광주광역시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진행된 ‘5·27 승리의 날 새벽광장’ 행사에서 기동타격대동지회가 부활제를 지내고 있다. 윤준명 기자 |
27일 새벽,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 광장(5·18민주광장)에는 묵직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장갑차와 헬기의 굉음, 총성이 울려 퍼졌다. 차갑게 식은 바닥 위에 쓰러진 시민들은 45년 전 그들이 느꼈을 공포와 외로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이어지는 힘찬 ‘부활의 몸짓’과 함께 승리의 여명을 맞았다.
1980년 5월27일, 계엄군의 총칼 앞에 용감히 맞섰던 시민군의 숭고한 헌신을 예술로 기리고, 시대를 넘어 그들과 연대하는 ‘5·27 승리의 날 새벽광장’이 열렸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 최후항쟁의 정신을 되새기며, 그날을 패배가 아닌 위대한 역사적 승리의 순간으로 기억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은 행사는 지난 26일 오후 5시18분부터 27일 오전 5시27분까지 약 12시간동안 이어졌다.
![]() 지난 26일 광주광역시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5·27 승리의 날 새벽광장’ 행사에서 서예가 강병인씨가 대형 붓글씨를 쓰고 있다. 윤준명 기자 |
광장 주변에서는 ‘주먹밥 정신’을 실천하는 음료와 간식 나눔이 이뤄졌고, 5·18민주화운동 관련 영상물을 상영하는 천막극장과 목판화 그리기 등 다양한 체험·참여 부스가 마련됐다. 이날 모든 행사 무대와 부스는 지자체나 기념재단의 지원 없이, 예술가들과 참여자들의 자원봉사,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으로만 꾸려졌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했다. 광주대학교 사진영상학과 학생들도 재능기부로 ‘시민군 사진촬영’ 부스를 운영하며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진준상(23)씨는 “광장을 찾은 시민 100명을 대상으로 흑백사진을 촬영하며, 시민군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어 뜻깊다”며 “광주사람으로서 5·18의 역사가 자랑스럽다. 꾸준히 관심을 갖고 관련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술과 현대·전통 무용 등 예술인들의 다양한 추모 활동은 어둠이 짙어질수록 깊은 울림을 더했다.
자정 무렵, ‘새벽불 순례팀’이 오월 영령들이 잠든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출발해 도보로 민주광장에 들어섰고, 놀이패 신명과 마당극 배우 지정남씨는 제사와 ‘환생굿’을 펼쳤다. 이 극은 그날 도청과 YWCA 등지에서 목숨을 잃은 시민군을 비롯해 지역 곳곳에서 숨진 학생과 시민 등 오월 열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지정남씨가 열사들의 목소리를 빌려 각자의 애절한 사연을 전하자, 관객들은 마치 그날의 비극을 눈앞에서 마주한 듯,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이동언(63)씨는 “광주에서 퇴직한 역사 교사로서 5·18을 대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간 사람으로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이름 없이 싸운 시민군에 대한 관심은 아직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그분들을 조명하고 널리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열사들의 영면을 기원하며 밤새도록 도청을 향해 ‘릴레이 108배’를 올리는 시민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특히 최근 12·3비상계엄 등으로 오월 정신이 다시 주목받는 가운데, 광주·전남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많은 이들이 ‘광장지기’로 참여했다.
대구에서 온 송필경(70)씨는 “젊은 시절 광주의 참혹한 상황을 전하는 발신자 미상의 편지를 받은 뒤 그 충격이 지금껏 가슴에 남아 있다”며 “5·18은 우리 민주주의사의 분수령이며, 5·27최후항쟁은 그 정점이다. 이날을 제대로 기억하고 계승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힘줘 말했다.
![]() 27일 광주광역시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진행된 ‘5·27 승리의 날 새벽광장’ 행사에서 시민들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이 산화한 모습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윤준명 기자 |
마침내 아침이 밝아온 광장에서는 그들과 함께 항쟁의 불꽃을 태우며 ‘해방 광주’의 최후를 지킨 기동타격대가 동지들을 위한 부활제를 올리면서 마지막 순서를 장엄하게 장식했다.
양기남 5·18민중항쟁기동타격대동지회장은 “우리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속에 평생을 살아왔다. 마지막 날을 기억하고, 동지들의 희생을 기리는 행사가 열려 감사한 마음”이라며 “묵은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5·18 진상규명에 끝까지 힘을 보태겠다”고 강조했다.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