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이사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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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맨발의 이사도라
  • 입력 : 2016. 06.16(목) 00:00
스물일곱 러시아 시인 예세닌과 사랑을 나눴던 마흔넷 미국 무용수 이사도라 덩컨. 그는 발레리나들이 200여년 굴레처럼 벗지 못했던 토슈즈를 벗어던지고 춤판에 올랐다. "당신들은 왜 치마와 트리코트만 보고 있지? 그러나 그 속에서 기형적으로 뒤틀린 근육이, 뒤틀려 망가진 골격이 춤추고 있음을 직시해. 이젠… 여성의 자유를 위해 춤을 추겠어."

맨발의 이사도라.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오랫동안 누워있던 고상한 침대를 갑자기 박차고 일어났다, 라고 현대무용가 도리스 험프리가 헌사한 춤의 혁명가요, 20세기 초 페미니즘의 대표 아이콘이다.

하지만 당대 미국 사회가 그에게 준 것은 주홍글씨 딱지였다. 덩컨은 예세닌과 3년간의 짧은 결혼생활 뒤 이탈리아 청년 팔체토와 덮개 없는 부가티 스포츠카를 타고 가다 목에 두른 빨간 스카프가 차바퀴에 끼는 바람에 사망한다. 삶만큼이나 극적인 죽음이었고 언론들은 그의 혁명적 춤보다 연애편력과 사생활에만 방점을 찍어댔다.

여성은 자기 자신이 육체의 주인이 돼야하며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억제할 권리, 즉 생명을 생성시키거나 그 생성을 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며 산아 제한과 여성의 인간화를 주장한 마거릿 생거. 호르몬 요법에 기초한 경구용 피임약의 탄생도 생거의 역할이 컸다. 레닌과 동갑내기로 유럽의 혁명적 사회주의를 이끈 로자 룩셈부르크, 아르헨티나 여권신장정책을 주도한 에바 페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고? 어째서? 남녀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깬 마거릿 미드. 이들 모두 토슈즈를 벗어던진 20세기 맨발들이다.

"여성의 몸은 병이나 거부 반응, 생체조직의 죽음을 유발하지 않고 자기 안에 생명이 자라도록 관용하는 특수성을 지닌다. 여성의 몸은 차이를 존중하는 반면, 가부장제 사회라는 거대한 몸은 차이를 배제하고 계급서열상으로 구성돼있다." 페미니즘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뤼스 이리가라이는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고 보는, 그 '평등'이란 단어가 함축하는 폭력성에 주목한다. 남성과 여성의 존재론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평등을 남성중심사회의 거대한 모순으로 본 이리가라이. 묻자.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서울 서초동 화장실, 신안 섬마을,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온 온나라의 분노들…. 혹 맨발로 가고 있는 이가 있는가. 있다면 달려가 함께 발을 맞춰보자. 지금 당장.

박재성 편집부장 jspark@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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