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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창업한 지 100년 이상된 장수기업들이다. 일본은 세계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기업들이 많다. 특수 부품이나 장비 등의 경우 일본 업체 한곳만 생산하는 '온리원(Only one)' 기업도 드물지 않다. 이렇듯 100년 이상 장수하는 기업들이 일본에는 꽤 많다는 점은 우리나라와는 상반된 모습이기도 하다. 오랜 기업들마다 선대(先代)의 노하우, 고유 기술의 계승과 발전을 통해 일본 경제에 기여하는 바도 크다.
최근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200년 이상 장수기업은 일본이 3937곳으로 가장 많고, 독일 1805곳, 프랑스 467곳 순이다. 반면 같은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창업 100년이 넘은 기업은 단 7곳(두산ㆍ동화약품ㆍ신한은행ㆍ우리은행ㆍ몽고식품ㆍ광장ㆍ보진재)에 불과했다.
광주ㆍ전남지역에는 100년이 넘은 장수기업이 단 한 곳도 없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기업의 장기적인 존속을 위해 일본 기업들이 장수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는지 직시해야 하는 시점이다.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오사카 무역관으로부터 추천받은 3명의 장수기업 대표들과 만나 구체적으로 들어봤다.
●유년시절부터 준비된 '가업 승계'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저희가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가 계속 하시던 일이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가업을 물려 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가랑비에 옷 젖듯이, 가업 승계는 '자연스러우면서도 당연한 일'이었어요."
KINKI AMIBARI㈜(킨키 아미바리) 오야마 쿄코(69ㆍ여) 사장, ㈜아미다이케 다이코쿠(あみだ池 大黑) 코바야시 쇼헤이(45) 대표, 다츠우마혼케주조㈜ 다츠우마 켄지(47) 대표가 공통적으로 한 얘기다.
1916년에 설립돼 올해로 창립 101주년을 맞은 대나무 뜨개질 제조기업인 '킨키 아미바리'.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오야마 쿄코 사장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그의 아들인 오야마 다카시(45) 상무이사는 4대째 가업을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 오야마 다카시 상무는 "어머니 때보다 뜨개질 시장이 축소되고 경기가 안좋아 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업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며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어머니가 하시는 이 일은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제 대(代)에서는 젊은 층을 겨냥한 활동을 통해 단순히 뜨개질 도구만 생각하는데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츠우마혼케주조㈜는 1662년에 설립, 올해로 창립 355주년을 맞은 일본 전통주 제조기업이다. 16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다츠우마 켄지 대표는 큰형이 가업을 잇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자연스럽게 둘째인 그의 몫이 됐다. 하지만 그는 어떤 불평 불만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슬하에 3명의 딸을 두고 있는 다츠우마 켄지 대표는 '17대째 가업을 잇게 할 자녀로 누굴 생각하고 있냐'는 질문에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다츠우마 켄지 대표는 "아직 초등학생인 딸들은 사실 자세한 건 모른다. 그저 회사 행사가 있거나 짬이 나면 데려와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게 하면서 느끼게 할 뿐이다"며 "첫째라서, 둘째라서, 막내라서가 아니라 모두 평등하게 대하려고 한다.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만든 술에 관심을 갖고 배울 의지가 있다면 그 딸에게 가업을 잇게 하고 싶다"고 전했다.
●先代 노하우 매뉴얼화ㆍ남다른 기업 철학
㈜아미다이케 다이코쿠는 오사카에서 화과자를 제조하는 기업 중 가장 오래됐다. 올해로 설립 212주년을 맞은 이 기업의 제7대 사장인 코바야시 쇼헤이 대표는 몇백년이 지나도 다이코쿠만의 화과자를 만들기 위해 창립 초기부터 내려온 선대 노하우를 이어 받아 '매뉴얼화' 시켰다.
코바야시 쇼헤이 대표는 "오사카에는 5곳의 화과자 제조기업이 있는데 맛과 품질 면에서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다이코쿠만의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212년이라는 전통, 고유 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화과자, 바로 이거였다. 그래서 선대 노하우를 바탕으로 매뉴얼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포장 공정에서는 소비자 반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상품 기획 시에는 지역 대학생과 협업하기도 한다. 전통 방식만 고수하기 보단 연령ㆍ세대별에 맞춘 다이코쿠만의 상품이라는 걸 알릴 수 있는 포장법을 적용시킨다는 점이 남다르다.
다츠우마혼케주조㈜의 특이사항은 기업명 보다 브랜드명인 '하쿠시카(白鹿ㆍ하얀 사슴)'로 일본 대중들에게 더 잘 알려졌다는 점이다. 회사 로고, 심볼 등 모두 장수를 기원하는 하쿠시카를 상징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쌀에서 시작해서 스마일로 가져간다'라는 슬로건이 주목받고 있다.
다츠우마 켄지 대표는 "일본에는 전통주를 제조하는 기업은 약 1200곳에 달한다. 그 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력도 있지만 직원들에게 우리 기업만의 철학을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쿠시카 술을 마시는 고객만큼은 맛도 맛이지만, '이(하쿠시카)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정말 행복하더라'는 말을 듣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재 기준 '잠재력ㆍ성장 가능성ㆍ도전 정신'
200년 이상된 일본 장수기업은 인재 채용을 할 때 있어 학벌, 경력, 스펙 등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있었다. 이 사람이 입사 이후 회사를 얼마나 변화 시키고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인지,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을 가장 염두하기 때문이다.
㈜아미다이케 다이코쿠는 어느 지역 출신이든 상관없이 다이코쿠를 아끼고,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코바야시 쇼헤이 대표는 "가업을 잇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게 직원을 뽑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인재를 채용해서 만들어 내는 좋은 과자가 고객에 대한 최상의 보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츠우마혼케주조㈜가 직원 채용시 염두하고 있는 점은 도전 정신이 강한 사람,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도 맡겨만 주면 최선을 다해 성공시킬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츠우마 켄지 대표는 "30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다츠우마혼케주조가 운영될 수 있었던 건 가업을 잇는 저희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땀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우리가 지금까지 일궈낸 성과를 개인 사욕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환원할 수 있도록 회사의 모든 가치는 인재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오사카=글ㆍ사진 주정화 기자
이 취재는 지역발전신문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