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수들 17년 도전… 방탄소년단 ‘빌보드 200’ 1위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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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소남의 통기타 이야기
한국 가수들 17년 도전… 방탄소년단 ‘빌보드 200’ 1위 결실
<국소남의 통기타 이야기> 49 광주 통기타 전성시대 (10)
최초로 월드뮤직장르 1위
5월28일 세계가 놀랄 쾌거
2001년 김범수 51위 첫 진입
  • 입력 : 2018. 06.12(화) 21:00
‘빌보드200 차트’ 정상을 차지한 방탄소년단(BTS) 필자 제공
BTS(방탄소년단), 그들은 이미 날개를 달았다! 2018

우리의 아이돌, 7명의 방탄 소년단 일명 BTS. 그들이 한국의 대중음악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2018년 5월 28일. 그들이 세계가 놀랄만한 쾌거를 이룩한 것이다. 가수 싸이가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1926년 8월에 발표된 국내 가요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 이후 국내 음악사에 이보다 더 큰 쾌거는 없었다.

‘방탄소년단(BTS)’ 그들 청춘이 이토록 빛나는 것은 생기 넘치고 젊어서일 뿐만이 아니다. 기성을 배척하고 스스로의 개성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차원이 다른 ‘K팝’의 정복자 - BTS

방탕소년단이 전미 흥행의 지표가 되는 ‘빌보드 200챠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한국 가수로는 물론 비미국가수로도 처음 달성한 쾌거로서 세계무대에서 대세 그룹의 명성을 실감케 한다. 그들의 역대 앨범 ‘빌보드 200챠트’ 순위를 보면 △2015. 11월 앨범 ‘화양연화’(미니)가 171위 △2016. 5월 ‘화양연화 영 포에버’(리패키지) 107위 △2016. 10월 ‘윙스’(정규) 26위 △2017. 2월 ‘유 네버 워크 얼론’(리패키지) 61위 △2017. 9월 ‘러브 유어셀프 승 허(Love Yourself 承 Her)’ (미니) 1위 △2018. 5월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 (정규) 1위.

그들이 이뤄낸 쾌거가 대단한 것은 비영어권 범위인 ‘월드 앨범 챠트’가 아닌 미국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메인 챠트 정상에 올랐다는 것이고 월드 뮤직 장르로 1위의 수상은 세계 최초의 기록이기도 하다.

영어가 아닌 한국어 음반이라 그 의미가 더 크다.

빌보드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 것은 BTS가 지난해 9월 ‘러브 유어셀프 승 허(Love Yourself 承 Her)’로 ‘빌보드 200’ 7위에 진입해 한국그룹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 두 차례 연속 ‘빌보드 200’ 10위안에 든 것이다.

방탄소년단 뿐만 아니라 K팝 전체의 대단한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이 앨범은 선주문 144만장, 전 세계 65개 지역 ‘아이튠즈 톱앨범 챠트’ 1위 등의 대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고 호평했다.

타이틀곡 페이크 러브(Fake Love)가 덴마크, 핀란드, 칠레 등 52개 지역 ‘아이튠즈 톱송 챠트’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특히 팝의 본고장인 미국 ‘아이튠즈 톱송 챠트’에서 앨범 전곡인 11개 트랙 모두를 Top 20에 안착시키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전 온라인 음원 챠트의 실시간 챠트 1위를 모두 석권했다. 2018년 빌보드 뮤직 어워드 (Billboard Music Awards)에서 컴백무대를 꾸미고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테 등을 제치고 2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빌보드 200’ 1위는 어떤 의미?

‘빌보드 200’은 일주일동안 어떤 앨범이 가장 많이 팔렸는지를 보여주는 순위표다. 씨디(CD) 판매와 앨범 수록곡의 디지털 음원 다운로드, 스트리밍 등을 집계해 순위를 매긴다.

BTS는 앨범판매지수 13만5천점을 기록, 12만3천점의 미국 팝스타 포스트 말론을 제쳤다. ‘빌보드 200’은 노래 인기 챠트인 ‘핫 100’과 함께 빌보드를 대표하는 메인 챠트다. 미국 내 판매량만을 따지는 이 챠트에서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낸 앨범이 정상을 차지한 건 12년만의 일이었고 한국인 프로듀서(방시혁)에, 한국인 멤버들이 한국말로 노래한 앨범이 정상에 오른 건 전 세계 대중음악시장 전체를 뒤흔들었던 파격이 아닐 수 없다.



17년 전 시작된 코리안 인베이전(Korean Invasion)

‘빌보드’로의 한국가수의 도전. 17년의 세월이 흐르고서야 빛을 보았다. ‘빌보드 200’ 정상을 차지하기까지 빌보드에 도전했던 한국가수로는 2001년 김범수가 히트 곡 ‘하루’를 영어로 리메이크 한 버전 ‘헬로 굿바이 헬로’가 부문별 ‘핫 싱글 세일스’에 51위로 처음 진입. 빌보드 메인 챠트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가수는 아시아의 별 보아다.

2009년 3월 미국 현지 정규 1집 보아를 발표해 ‘빌보드 200’에 127위에 오른 바 있고 또한 노래 인기 챠트 ‘핫 100’에 처음 진입한 가수는 걸그룹 원더걸스다 2009년 10월 ‘노 바디’로 76위에 랭크, 이후 빅뱅이 2012년 미니음반 ‘얼라이브’로 ‘빌보드 200’에서 150위, 지드래곤이 같은 해에 솔로미니음반 ‘원오브더 카인드’로 161위를 차지했었다.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사례로는 싸이가 2012년 ‘강남 스타일’로 ‘핫 100’에서 7주 연속 2위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싸이 역시 미국현지음반 발표없이 한국에서 발표한 한국어 음원으로 메인 챠트에 올랐다. 싸이는 그후 후속곡 ‘젠틀맨’으로 ‘핫 100’ 5위, ‘행 오버’로 ‘핫 100에’서 26위의 성적을 내기도 했다.

투애니원 출신 씨엘은 2016년 10월 미국에서 낸 첫 싱글 ‘리프티드’로 ‘핫 100’에서 94위를 기록한 국내 솔로 여가수로의 첫 사례였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했던가? 흔히 말하는 20세기를 총정리 하면서 세계 Pop계의 가장 유명한 사건 1위로 1964년 2월부터 시작된 소위 영국의 그룹들이 (비틀즈, 롤링 스톤즈, 홀리스, 써쳐스, 데이브 클락 파이브 등) 대서양을 건너 미국 본토를 융단폭격 하듯 초토화 시킨 사건, 즉 영국의 침략(British Invasion)이었다.

이에 버금간다고 해도 되는 걸까. 우리의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 빌보드의 정점에 둥지를 틀었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 수도 있다. 그들은 1위 등극 후 소감에서 이렇게 당당히 그들의 꿈을 말했다. ‘빌보드 핫 100’, ‘빌보드 200’ 그리고 그래미에서의 1위, 스타디움 투어들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가수가 꼭 될 것이라고. 코리안 인베이전(Korean Invasion)의 선두에 방탄소년단이 나설 거라고.



광주 통기타 효시 YMCA 양동이 주도

광주 통기타 효시는 YMCA Sing Along의 양동이다. 196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시대 산물인 ‘잘 살아보세’의 의미인 새마을 운동(1970.4.22.일)과 궤를 같이 한 정부주도의 건전가요 부르기 운동이 한창이던 때가 1970년 초다.

서울 YMCA에서 전석환이 주도한 KBS 라디오 공개방송인 ‘다함께 노래 부르기(삼천만의 합창)’라는 프로그램에서 기인된 소위 건전가요 부르기가 전국적으로 파급, 유행됐다.

서울 YMCA에서 보금 차원의 프로그램에 각 시도의 대표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아빠는 엄마를 좋아해’(외국곡)의 작사자로 알려진 이 지방 광주출신으로 한양대학에 재학 중이던 양동이가 전남 대표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방학동안 광주 YMCA에서 통기타를 매고 건전가요 및 포크송, 게임송, 포크댄스 등을 가르쳤다.(1969~1974년) 1975년에 대학후배던 필자가 이 프로그램의 바톤을 이어받게 되고, 1977년에 별밤 후배가수인 이준용(현 TBN 한국교통방송 본부장(사장)이 이어 받아 1978년까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YMCA 청소년부(YB)는 탁성두가 조봉길, 박수광과 더불어 YB 싱어롱을 주도한 바 있다.(1969~1970)

누가 뭐라 해도 광주 통기타의 효시는 YMCA의 양동이가 건전가요 보급을 계기로 시작됐고, 방송이나 일반무대는 듀엣으로 활동했던 필자와 이장순이 그 계보를 이어갔다. 그후 1977년 MBC 대학가요제의 탄생이 기폭제가 되어 대학가에 통기타 열풍이 거셌고 별밤가족, 소리모아 등이 70년대에, 80년대 중반에 ‘꼬두메’라는 통기타 창작그룹이 그 맥을 이어갔다.

198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통기타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다. 빛고을 광주도 그때 통기타의 거센 유행의 물결에 너나없이 춤을 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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