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에서 사는 지인의 부음에 조문하고 내려오는 길에 일행들과 함께 전주에 들렀다. 누 천년의 고도 전주는 늘 그랬듯 시간여행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용비어천가’의 설화가 담긴 오목대·이목대와 경기전, 전라감영…. 조선 왕조의 본향 전주의 고건축물에 스며있는 역사의 주름을 대할 때마다, 그 시간의 깊이와 넓이에 경탄이 절로 나온다. 이번 시간여행은 전주부성길로 잡았다. 부성길은 조선 선조 4년, 전라감사로 임용된 문신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이 이틀 여정으로 걸었던 길이다. 그해 유희춘의 ‘미암일기(眉巖日...
2023.08.16 15:25“이제 방수가 되는 손목시계가 모두에게 필요할 것이다.” 1926년, 스위스 롤렉스 창업주 한스 빌스도르프가 세계 최초로 방수가 되는 시계 오이스터를 출시했다. 예술성과 정확성으로 시계의 가치를 평가했던 시절, 운동선수와 탐험가 등 극한의 환경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늘면서 미래에는 방수 기능이 손목시계의 필수적인 아이템이 될 것이라는 게 한스의 생각이었다. 그의 확신은 정확했다. 특히 모험가 프랜시스 치체스터가 226일간 요트로 세계 일주를 하고, 에드먼드 힐러리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때 롤렉스 오이스터를 착용했다는 ...
2023.08.15 17:41“어른들은 우리미래와 상관이 없어요. 기후위기가 심각해진 미래에 어른들은 없을 거고 우리는 고통스럽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에요. 나중에 헌법재판소에 또 가서 말하고 싶어요. (환경보호)법을 그렇게 약하게 하면, 어른들이친구에게 돈 빌려주고 나중에 안 돌려주는 것과 다름없다고요?”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아이기후소송의 헌법소원 청구인인 아이들이 한말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환경보건위원회,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소속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아기 기후소송단’은 헌법재판소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
2023.08.13 14:13“남들과 똑 같은 기사를 쓸거면 현장에 기자를 왜 보내나. 힘들게시리. 그냥 자료 받아 쓰면 되지.” 사회부장으로서 필자가 부원들에게 현장 취재를 지시할 때 항상 하는 말이다. 똑같은 현장이라 하더라도 기자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자를 설명할 때 글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하기 위해선 꽤나 힘든 절차가 필요하다. 정확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제대로 듣고, 제대로 봐야 한다. 이것은 기본이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바로 ‘본질’에 대한 의문이다. 어떤 현상에는 항상 본질이 있...
2023.08.10 12:55자주 사용되는 사자성어 가운데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대개 어떤 사건이나 이야기의 내용이 깊이 들어갈수록 점점 더 재미가 있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점입가경’은 중국 동진(東晉)의 화가였던 고개지(顧愷之)의 일화에서 유래됐다. 고개지는 서예로 이름을 날리던 동시대의 명필가인 왕희지와 함께 당대 예술계의 투톱을 달리고 있었다.그는 재주가 많은 것과 독특한 성격으로 유명했는데, 특히나 불교 인물화에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고개지는 사탕수수를 좋아했다. 그는 항상 뿌리에서 먼 쪽의 얇은 가...
2023.08.09 16:44“안전이 최우선이다. 모든 대원을 안전하게 대피시켜라.” 1971년 8월 6일, 일본 후지산 아래 아사기리에서 열린 제13회 세계잼버리에 초비상이 걸렸다. 이날 후지산은 19호 태풍 ‘올리브’의 영향으로 강풍과 폭우에 휩쓸렸다. 일본은 자위대의 지원을 받아 1만 2500명의 대원을 대피시켰고 모든 프로그램을 중지했다. 500여 명을 파견한 한국 단원들도 자위대와 학교 등에 분산됐다. 태풍 이후 행사는 다시 진행됐지만 이 대회는 잼버리 역사상 최초의 자연재해 였다. 4년마다 열리는 잼버리는 세계 청소년들의 올림픽이다. 1920년...
2023.08.08 17:26이동성 민족인 서양 사람들은 더우면 더위를 피해 이동했다. 보통 여름 휴가가 2주에서 한달 가량이다. 반면 정착성 민족인 우리는 이동하지 않고 더위를 피해야 했다. 그래서 피서 방법이 남달랐다. 의식주 생활 속에 통풍 구조가 스며들었다. 옷과 피부 사이에 가장 통풍량이 많은 옷이 한복이다. ‘옷이 몸에 붙으면 복 들어갈 틈이 없다’는 속담처럼 한복의 넉넉한 여유는 복과 바람이 드나드는 공간이다. 무더운 여름철, 잠 잘때는 죽부인이라고 해 ‘바람 각시’를 안고 잤다. 대나무로 만들어 통풍 기능을 갖춘 침구류인 이 ‘죽인형’을 더...
2023.08.07 13:48최근 미국에서 스타벅스의 ‘바리스타에게 팁(Tip) 주기’가 논란이 됐다. 예전엔 매장 계산대에 팁을 담는 박스 등을 두고, 원하는 손님들에 한해 1달러 정도의 팁을 받아왔는데, 매장은 물론 모바일로 주문할 때 결제 화면에서 팁 금액을 선택하도록 정책을 바꾼 것이다. 팁 문화가 발달한 미국이지만 소비자들은 선택이 아닌 강요라며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팁은 음식점이나 호텔 등에서 서비스를 제공해 준 직원에게 감사의 표현으로 소정의 돈을 주는 문화다. 팁의 어원은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신속함을 보장하기 위해’로 해석되는 ‘...
2023.08.06 14:151912년 4월 14일, 첫 항해에 나선 타이타닉 호가 북대서양에서 바다 위를 떠 다니던 빙산과 충돌해 침몰했다. 그곳은 보통 때는 빙산이 거의 내려오지 않는 지역이었다. 같은 해, 아문센에게 남극점 최초 도달이라는 기록을 빼앗긴 채 귀로에 올랐던 스코트 일행은 예기치 못한 악천후를 만나 탐험대 전원이 사망하는 비극을 맞았다. 얼핏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의 배후에는 아무도 몰랐던 비밀이 있었다. 그 해 ‘엘니뇨’가 전 세계의 기후를 뒤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엘니뇨’의 메커니즘은 그야말로 ‘가설’일...
2023.08.03 12:42휴가는 설레임이다. 손꼽아 기다린 휴가는 아마도 초등학교 때 소풍과 군 훈련소 퇴소 뒤 첫 휴가 아니었을까. 결석을 밥먹듯 하던 친구들도 소풍가기 3~4일 전부터는 줄곧 학교에 나오곤 했었지. 어린시절 소풍은 1년 중 큰 행사였다. 코로나19로 막혔던 야외활동이 봇물 터지듯 터질 요량이다. 모두들 3년간 못간 휴가를 한풀이라도 할 요량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개울가에 발 담그고 삼겹살에 야채쌈도 좋지만 이번 여름은 추억에 남을 특별한 휴가를 떠나면 어떨까. 농촌융복합산업 선도업체 체험 프로그램이나 농촌교육농장을 가보는 ...
2023.08.02 12:16‘태백산맥’ 작가 조정래에게 노고단은 비극의 현장이다. 이념의 갈등과 동족상잔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은 그곳, 노고단의 비경도 그에게는 아름다움보다 슬픔의 현장이다. 토벌대의 끈질긴 추격을 피해 지리산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빨치산. 조정래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이들이 목격한 노고단을 이렇게 묘사했다. “노고단에 오르는 순간 그들이 마주친 것은 커다랗게 둥근 불덩어리였다. 상상하기 어렵게 큰 그 불덩어리는 해 였다.(중략)…황적색이 적색으로 변해 하늘은 더욱 붉은 빛으로 칠해졌다. 그 진해진 붉은 빛은 이제 불길이 아니었다. 환상적...
2023.08.01 12:39과거 ‘사오정 시리즈’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귀가 어두워 상대방 말뜻을 제대로 못 알아듣고 동문서답식의 황당한 대답을 하는 사오정의 모자라 보이는 듯한 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풍자하는 일종의 해학이 담긴 유머였다. 다음은 사오정 시리즈 중 하나인 ‘가족회의’다. 아버지 “이 문제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큰 애 말해봐라”, 큰아들 “그런 문제라면 왜 장남인 제게 묻지 않으시나요? 섭섭해요”, 막내 “모두 잡담은 그만하고 회의 시작해요”, 아버지 “그래? 모두의 의견이 그렇다면 이 문제는 그렇게 하자” 하는 식이다. 여기서 사오정은 ...
2023.07.31 14:41“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더니~”, “추운줄도 잊어버리고 팽이놀이하는 동네의 골목에서 노니는 아이들 소리~” 7080세대 광주사람이라면 한 두 가지 사연은 있음직한 ‘사직동 통기타거리’는 더 이상 수사(修辭)가 필요치 않은 광주 포크 음악의 중심지다. 한국 포크음악사에 ‘광주음악’이라는 흐름을 형성했던 이 곳에서 활동했던 전국구 가수들도 여럿 있다. ‘이름 모를 소녀’와 ‘하얀 나비’로 히트쳤던 천재 ...
2023.07.30 14:112007년이었다. 일명 ‘새벽 발바리(성폭행범에 대한 속어)’ 혹은 ‘북부 발바리’인 A씨에 대한 사건 취재를 했을 때가. 당시 광주 북부경찰서 출입 중이었는데, 얼마나 신출귀몰했는지 흔적도 좀처럼 남지 않았다. 거기다 피해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만 갔고, 경찰의 표정도 흑빛이었다. 하루 빨리 잡겠다고 말은 했지만, 범인은 악랄하고 용의주도했다. 경찰과 더불어 사건 기자들도 마음이 급했다. 밤새 경찰서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유사 혐의자라도 붙잡았다는 첩보가 들리면 새벽이어도 부리나케 달려갔다. 기실 해당 범...
2023.07.27 17:09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화성시에 걸쳐있는 면적 56.5㎢의 인공호수인 시화호. 1987년 물막이 공사가 시작된 후 시화호는 한때 ‘죽음의 호수’로 불렸다. 1994년 해수 흐름이 완전히 끊긴 이후 수질은 악화됐고 물고기의 떼죽음이 잇따랐다. 당초 시화호는 인근에 조성된 시화공단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공업용수는 커녕 농업용수로도 부적합한 골칫거리 폐수가 되고 말았다. 1조원을 들여 만든 수원지의 썩은 물을 개선하기 위해 정화비용만 6000억원이 더 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시화호는 인간이 만들...
2023.07.26 1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