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작가 조정래에게 노고단은 비극의 현장이다. 이념의 갈등과 동족상잔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은 그곳, 노고단의 비경도 그에게는 아름다움보다 슬픔의 현장이다. 토벌대의 끈질긴 추격을 피해 지리산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빨치산. 조정래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이들이 목격한 노고단을 이렇게 묘사했다. “노고단에 오르는 순간 그들이 마주친 것은 커다랗게 둥근 불덩어리였다. 상상하기 어렵게 큰 그 불덩어리는 해 였다.(중략)…황적색이 적색으로 변해 하늘은 더욱 붉은 빛으로 칠해졌다. 그 진해진 붉은 빛은 이제 불길이 아니었다. 환상적...
2023.08.01 12:39과거 ‘사오정 시리즈’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귀가 어두워 상대방 말뜻을 제대로 못 알아듣고 동문서답식의 황당한 대답을 하는 사오정의 모자라 보이는 듯한 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풍자하는 일종의 해학이 담긴 유머였다. 다음은 사오정 시리즈 중 하나인 ‘가족회의’다. 아버지 “이 문제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큰 애 말해봐라”, 큰아들 “그런 문제라면 왜 장남인 제게 묻지 않으시나요? 섭섭해요”, 막내 “모두 잡담은 그만하고 회의 시작해요”, 아버지 “그래? 모두의 의견이 그렇다면 이 문제는 그렇게 하자” 하는 식이다. 여기서 사오정은 ...
2023.07.31 14:41“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더니~”, “추운줄도 잊어버리고 팽이놀이하는 동네의 골목에서 노니는 아이들 소리~” 7080세대 광주사람이라면 한 두 가지 사연은 있음직한 ‘사직동 통기타거리’는 더 이상 수사(修辭)가 필요치 않은 광주 포크 음악의 중심지다. 한국 포크음악사에 ‘광주음악’이라는 흐름을 형성했던 이 곳에서 활동했던 전국구 가수들도 여럿 있다. ‘이름 모를 소녀’와 ‘하얀 나비’로 히트쳤던 천재 ...
2023.07.30 14:112007년이었다. 일명 ‘새벽 발바리(성폭행범에 대한 속어)’ 혹은 ‘북부 발바리’인 A씨에 대한 사건 취재를 했을 때가. 당시 광주 북부경찰서 출입 중이었는데, 얼마나 신출귀몰했는지 흔적도 좀처럼 남지 않았다. 거기다 피해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만 갔고, 경찰의 표정도 흑빛이었다. 하루 빨리 잡겠다고 말은 했지만, 범인은 악랄하고 용의주도했다. 경찰과 더불어 사건 기자들도 마음이 급했다. 밤새 경찰서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유사 혐의자라도 붙잡았다는 첩보가 들리면 새벽이어도 부리나케 달려갔다. 기실 해당 범...
2023.07.27 17:09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화성시에 걸쳐있는 면적 56.5㎢의 인공호수인 시화호. 1987년 물막이 공사가 시작된 후 시화호는 한때 ‘죽음의 호수’로 불렸다. 1994년 해수 흐름이 완전히 끊긴 이후 수질은 악화됐고 물고기의 떼죽음이 잇따랐다. 당초 시화호는 인근에 조성된 시화공단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공업용수는 커녕 농업용수로도 부적합한 골칫거리 폐수가 되고 말았다. 1조원을 들여 만든 수원지의 썩은 물을 개선하기 위해 정화비용만 6000억원이 더 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시화호는 인간이 만들...
2023.07.26 14:00“포탄이 터질 때마다 나도 같이 폭발했으면 한다. 신이여, 우리를 지켜 주소서.” 1973년 10월, 이집트와 시리아가 주축이 된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기습적으로 공격했다. 이스라엘과 아랍이 벌인 욤키푸르 전쟁의 시작이었다. 전쟁은 격렬했다. 특히 이스라엘은 19일간의 전쟁에서 미국이 10년 가까이 벌인 베트남전에서 잃은 것보다 거의 3배 더 많은 사상자를 냈다. 대다수 국방시설도 파괴됐다. 수많은 병사들이 숨져간 골란 고원 기갑전투는 지금도 ‘세계의 전쟁’으로 회자될 정도다. 전쟁이 멈춘 후 이스라엘은 실패의 원인을 분석...
2023.07.25 16:35“여봐라! 개작두를 대령하라!”. 1990년대 중반 한국에서 방영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대만 연속극 ‘판관 포청천’에서 포청천이 사건을 해결하고 끝 장면에서 항상 외쳤던 대사다. 이 드라마는 중국 북송시대 명판관인 포증의 공명정대한 판결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법의 형평성에 불만이 있었던 사람들을 대리만족시켜주었기에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정의를 위해 황족이나 고관 대작, 심지어는 자신의 친구조차도 한치의 용서없이 단호하게 작두로 응징하는 모습을 보면서 당시 썩은 정치에 지친 국민들에게 어필돼 폭발적인 시청...
2023.07.24 17:05카나리아는 십자매, 잉꼬와 함께 3대 관상조류로 불린다. 녹색, 황색, 백색 등 다양한 색상의 품종이 개발됐다. 새 소리가 맑고 아름답다. 인간의 손에 길러진 지는 400년이 됐다. 소형 관상용 새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카나리아는 청정지역인 대서양 카나리아제도가 원산지다. 탁한 공기에 매우 민감하다는 특성 때문에 오염지역을 감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다. 19세기 유럽의 탄광, 갱내로 들어가는 광부들은 항상 새장을 들고 갔다. 새장 안에 있는 새는 카나리아다. 카나리아가 울음을 멈추거나, 횃대에서 떨어지면 광부들은 갱내에 유독가...
2023.07.23 14:14“첫째, 손녀 유일링에게는 대학 졸업까지 학자금으로 1만 불을 준다. 둘째, 딸 유재라에게는 유한공고 주변 땅 5천 평을 물려준다. 셋째, 일한 자신의 소유 주식은 전부 사회에 기증한다. 넷째, 아내 호미리는 재라가 돌봐주기 바란다. 다섯째, 아들 유일선에게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지난 1971년, 76세로 영면한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이 공개됐을 때 세상은 깜짝 놀랐다. 내로라 하는 회사 대표가 아내와 아들에게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삶을 돌...
2023.07.20 17:38‘차가워 너무나 속이 시려 너무나~ 이빨이 너무 시려 냉면 냉면 냉면~ 질겨도 너무 질겨 냉면 냉면 냉면 그래도 널 사랑해~’ 지난 2009년 여름 TV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선보여 히트를 쳤던 명카드라이브의 노래 ‘냉면’의 가사다. 노래만 듣고 있어도 찌는 듯한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줄 것 같다. 바야흐로 냉면의 계절이 도래했다. 살얼음이 동동 뜬 육수에 얇게 썬 고기수육과 오이채, 그리고 삶은 계란 반쪽을 얹은 냉면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더위에 지친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냉면의 유래는 고려시대까지 거...
2023.07.19 13:29서기 578년, 일본 고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쇼토쿠 태자가 백제의 건축 장인 여럿을 초빙했다. 일본에 최고의 절을 지어 달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참여한 이가 백제 사람 유중광. 그는 15년 동안 식음을 전폐한 채 사찰 건설에 힘을 쏟아 서기 593년, 시텐노지(四天王寺·사천왕사)를 완공했다. 사찰의 위용에 감탄한 태자는 그에게 대대손손 건물을 관리해 달라고 부탁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기업이 1500년을 이어온 곤고구미(金剛組)다. 유중광이 만든 곤고구미의 철학도 ‘기본에 충실해라’, ‘보이지 않는 곳에 좋은 자재를 써라’ 등이었다....
2023.07.18 16:16“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살아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는 미국 명문고 웰튼 아카데미 새학기 공부가 인생의 전부였던 학생들이 키팅 선생을 만나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1990년 개봉한 작품으로 ‘카르페디엠 (carpe diem)’이라는 명대사를 남긴 명작이다. 아카데미 각본상을 비롯해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로 관객들의 가슴속에 ‘인생 영화’로 남은 작품이다. 키딩 선생은 모교 영어교사로 부임한 뒤 첫 수업에서 ‘할 수 ...
2023.07.17 14:20더불어민주당에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고 있다. 민주당 혁신위원회의 1호 쇄신안인 불체포특권 포기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 13일 의원총회를 열고 혁신위원회가 요구한 ‘민주당 의원 전원의 불체포특권 포기 및 가결 당론 채택’ 수용 여부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혁신위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수용하지 않으면 ‘당이 망한다’고 경고했음에도 반대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와 추후에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불체포특권에 대한 민주당 내 찬성과 반대 진영의 온도차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찬성하는 의원들...
2023.07.16 15:34정부·여당이 월 180여만원 수준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다룬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를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었다. 이 자리에서 조현주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는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사람들이 센터를 방문하는데 웃으면서 방문한다. 어두운 얼굴로 오시는 분들은 드물다”고 말했다. 조 담당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오는) 그런 분들은 장기간 근무하고 갑자기 실업을 당해서 저희 고용보험이 생긴 목적에 맞는, 그런 남자분들 같은 경우”라고 했다. 조 담당자는 이어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
2023.07.13 16:30‘떨어질 낙(落)’자를 써 징벌로 곡해할 수 있으나, 전통사회에서 낙향(落鄕)은 선비의 미덕이었다. 지조 있는 선비가 곧은 심지를 드러내 세간의 우러름을 받았던 낙향 사례는 우리 역사에 수없이 많다. 역성혁명으로 조선 왕조를 세운 이성계가 고려말 대학자 이색을 찾아가 ‘나를 버리지 말아 주시게’ 하며 출사를 간청했다. 목은은 단호했다. ‘나라안에 내가 앉을 곳이 없소. 망국의 대부는 그저 낙향해 있다가 죽으면 고산에 묻힐뿐이요’라고 답했다. 낙향을 뜻하는 귀거래(歸去來)를 십여 차례나 행한 선비도 있었다. 성리학의 비조 ...
2023.07.12 16:04